영국 Z세대 사이에서 뜨개질과 자수 같은 정적인 취미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스마트폰 과사용에 지친 청년들에게 아날로그 취미는 몸과 마음을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골프나 헬스, 악기 연주 등 다른 취미에 비해 경제적 부담이 덜하다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작용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공예는 마음의 약 : Z세대와 힐링 취미의 급부상' 제목의 기사에서 "코바늘뜨기, 도예 등은 한때 조부모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젊은 세대와 공동체를 연결해주는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단순히 옛것을 그리워하는 '복고(레트로)' 트렌드가 아닌, 디지털 피로 속에서 휴식을 찾으려는 욕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특히 영국에서의 아날로그 취미 확산은 청소년들의 암울한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영국 10대는 유럽에서 가장 불행한 세대 중 하나로 꼽힌다. 영국 자선단체인 '칠드런스 소사이어티'가 지난해 발표한 '행복한 성장기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15세 청소년의 25.2%가 '삶의 만족도가 낮다'고 답했다. 이는 유럽 평균보다 8.7%포인트 높은 수치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생계비 압박, 스마트폰 과의존 등이 겹치면서 젊은 세대의 피로감은 갈수록 누적되고 있다.
이 가운데 도예·뜨개질·그림 그리기 같은 '슬로우 취미'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데다, 비용 부담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교감하고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젊은층의 호응을 끌어내는 요인이다.
런던 풀럼의 한 도예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 아메드씨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젊은 고객이 크게 늘었다"며 "데이트나 모임 장소로도 많이 찾는 등 이제는 진정한 커뮤니티 공간이 됐다"고 했다. 카페를 즐겨 찾는 단골손님 카르민 발렌테(34) 역시 "도예를 하는 시간만큼은 세상과 온전히 차단된다"며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지며,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창조의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다"고 말했다.
비용적인 매력도 크다. 런던에 거주하는 엠마(23)는 "공예 체험 수업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고립 뒤 다시 공동체를 회복하는 의미가 있다"며 "무엇보다 무료 행사나 10파운드면 즐길 수 있어 술집에서 보내는 밤보다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국내서도 '디지털 디톡스' 바람과 함께 아날로그 취미나 오프라인 모임 등이 확대되는 추세다. 디지털 디톡스란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줄이고 독서나 명상 등을 통해 심신을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정신적 휴식을 찾는 일종의 '디지털 단식'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주목받고 있는 취미는 '필사'다. 직접 손으로 문장을 옮겨 쓰는 과정에서 얻는 집중력과 정서적 안정이 인기 요인으로 지목된다. 교보문고는 지난해 필사책 판매량이 전년 대비 692.8% 급증했으며, 출간 종수도 57권에서 81권으로 42.1% 늘었다고 밝혔다.
공예에 대한 관심 역시 이전보다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뜨개상영회'다. CGV는 지난 1월 뜨개질을 하며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특별 상영회를 선보였는데, 전석이 매진될 만큼 화제를 모았다. 영화를 보며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색다른 경험이 젊은 세대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전문가는 아날로그 취미가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강조했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데이지 팬코트 교수는 "Z세대는 정신 건강 관리에 적극적이며, 공예 활동은 스트레스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뜨개질 같은 취미는 개인의 기분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효과도 있다"며 "취미 활동은 유대감과 소속감을 키워 외로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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