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미국 의회에서 표류해온 '한국 동반자법(Partner with Korea Act)'이 조지아주 단속 사태를 계기로 통과 압박이 커질 전망이다. 대규모 인력이 구금되는 사태로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이대론 현지에 안전하게 투자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표출하면서 제도 개선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근로자 안전과 사업 지속성에 근본적 의문이 제기된 만큼 전문직 취업비자를 크게 늘리지 않고선 추가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우리 기업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동반자법 통과 요구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9일 재계에 따르면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미국 현지 로비업체 '토머스캐피털파트너스'와 3만달러에 계약을 갱신했다. 갱신 이후 주요 업무로는 한국 동반자법 지지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아웃리치 활동이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 금액도 종전보다 늘렸으며 활동 범위를 의원실 접촉에서 공개 여론 조성까지 넓히는 등 미션 자체를 확대했다. 미국 의원들이 지속성을 갖고 한국 동반자법 통과를 위해 힘써줄 수 있도록 후방에서 지원하는 업무다. 무협은 워싱턴D.C. 현지 변호사단·싱크탱크와의 협력도 추진하며 단순한 모니터링을 넘어 법안 통과에 필요한 구체적 명분을 마련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무협은 2024년에만 미국 현지 로비에 약 25만8000달러를 지출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이미 20만4000달러를 집행했다. 이를 통해 118회기 의회에선 동반자법 지지 의원을 40명까지 늘렸다.
기업 차원에서도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주요 그룹 대관 조직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워싱턴D.C. 사무소 인력을 보강해왔는데, 최근엔 현지 법률 자문을 통해 ESTA·B-1 비자 활용 방안, 현지 채용 확대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했다. 다만 개별 기업 차원에서 뚜렷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고 보고 정부 차원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쪽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 동반자법은 전문 교육을 받은 우리 국적의 기술자를 대상으로 전문직 취업비자(E-4)를 연간 최대 1만5000개 발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우리 기업은 기술자를 미국에 파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기존 '6개월 또는 1년'에서 '한 달 이하'로 단축할 수 있다. 법안은 지난 7월23일 영 킴 공화당 의원, 시드니 캄라거-도브 민주당 의원이 공동 발의해 통과를 위한 제반 절차를 앞두고 있다.
이번 단속 사태를 계기로 미국 내에서 한국 동반자법에 대한 주목도도 크게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력 교류 필요성을 언급하고 일부 의원들이 법안을 거론하면서 입법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미 의회 아시아태평양계 코커스(CAPAC)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공동 성명을 내고 "이번 단속이 경제를 침체시키고 글로벌 파트너 신뢰를 훼손한다"고 지적하며 트럼프 정부에 절차 마련을 요구했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 동반자법은 우리도 그렇고, 미국 내에서도 큰 관심을 끌지 못해 왔다"며 "하지만 이번 단속 사태를 통해 분위기가 바뀔 조짐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 기업들은 '한국 동반자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정부의 외교 공백으로 비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온 불편을 한 번에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때 E-4 비자 내용을 포함시키는 안을 두고 이견을 보이면서 '한국인 전용 취업비자'를 보장받지 못했다. 당시 미국 의회가 이민, 비자와 관련해선 행정부가 아닌 의회의 권한이라고 주장하고 나와 관련 합의가 불발됐다. 반면 미국과 교역하는 다른 국가들은 FTA를 체결할 때 자국 전용 전문직 비자(TN·H-1B1·E-3)를 확보해 매년 수천명에서 1만명 이상 쿼터를 보장받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TN 비자를 통해 연간 쿼터 없이 전문직 인력을 파견할 수 있다. 호주는 E-3 비자로 연간 최대 1만500개의 쿼터를 확보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와 칠레는 각각 5400개와 1400개의 H-1B1 비자를 배정받고 있다.
이번 단속 사태 전후로 우리 기업들은 특별 비자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 한 미국에서 안정적인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미국 대관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나서서 트럼프 정부와 협상을 통해 국가별 비자 쿼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 기업의 안정적인 미국 진출을 위해서는 특별 비자 제도 도입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수라는 게 재계의 절박한 인식이다.
동반자법이 비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는 열쇠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통과까진 의회의 높은 문턱이 남아 있다. 미국은 양원제로 운영돼 법안이 상임위를 거쳐 하원과 상원에서 모두 과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정인교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높아진 관심만큼 견제도 미국 내에서 많아졌을 것"이라며 "통과를 위해 많은 노력과 로비를 오랫동안 해왔지만 결국 통과 요건을 확보하지 못해 자동 폐기되는 일이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김영만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총괄과장은 "단기적으로 뭔가 가능한 방안을 검토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법이 하원을 거쳐 상원에 오르기까지 관련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여론 등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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