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에게 쇼팽 콩쿠르는 어쩌면 운동선수에게 올림픽보다 더 간절한 무대일 수 있다. 5년마다 열리고, 만 30세 이하만 참가할 수 있는 나이 제한도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쇼팽 탄생 200주년에 열린 콩쿠르는 피아니스트 윤홍천에게 마지막 기회였다. 윤홍천은 출전하지 않았다. 그는 "쉽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바로 직전 해 클리블랜드 콩쿠르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최종 결선에서 정말 잘 쳤다. 나도 1등을 기대했고, 주위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결과는 3등이었다. 그때 '이제는 콩쿠르를 놓아야겠다, 욕심을 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연주다운 연주를 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실패 아닌 실패에서 그는 '진정한 연주란 무엇인가'를 깨달은 게 아니었을까.
윤홍천은 지난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정교수로 임용됐다. 강의 시작을 앞둔 지난 1일 한예종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클리블랜드 콩쿠르는 그가 2007~2008년 이탈리아 코모 피아노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마친 직후 치렀다. 그는 코모에서의 2년을 통해 피아노 연주의 즐거움을 다시 찾았다고 했다.
"코모 이전 독일에서 공부할 때는 엄격한 스타일의 선생님 한 분으로부터 배웠는데, 코모는 개성이 다른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는 체제였다. 내가 느끼는 감정으로 연주를 듣는 사람을 설득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때 깨달음을 바탕으로 윤 교수는 한예종에서 정형화된 가르침을 지양하고 학생 각자의 개성을 살려주려 한다. "무엇보다 피아노를 즐겁게 치는 게 중요하다. 즐기며 연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학생들의 연주를 잘 들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현재 그는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유럽 무대를 중심으로 활발히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 학기 중에는 한국에 머물러야 하기에, 최근 한예종 근처에 거처를 새롭게 마련했다. 그는 "수업을 시작하면 아무래도 연주 활동이 줄지 않을까 걱정된다"면서도 "다행히 한예종은 연주 활동에 개방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오는 6일 부천아트센터에서 독주회가 예정돼 있다.
이번 무대에서 그는 브람스의 '세 개의 인터메조',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현대 작곡가 존 애덤스의 '프리지안 게이츠', 레베카 사운더스의 '거울아 거울아'를 연주한다. 애덤스의 곡에 대해 그는 '26분 정도 되는 곡인데, 같은 패턴이 조금씩 변형되며 반복돼 시간을 잊게 만드는 느낌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사운더스의 곡은 '동화 백설공주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윤 교수는 피아니스트로서 진정성 있는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연주자가 자신을 내세우는 연주가 있고, 음악 자체를 내세우는 연주가 있는데 연주자가 자신을 내세우는 연주는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음악이 중심이 되는 연주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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