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속아 평생 모은 돈을 모두 잃을 뻔한 70대 여성이 택시 기사의 기지 덕분에 피해를 면했다.
4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전남 영광군 한 수녀원에서 생활하는 A씨(75)는 전날 휴대전화에 등록돼 있지 않은 번호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자신을 금융감독원 관계자라고 밝힌 한 남성은 "사용 중인 통장이 범죄에 연루됐다"며 모든 돈을 인출해 금으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이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자주 사용하는 금감원 사칭 수법이다.
놀란 A씨는 지시에 따라 곧장 영광 소재 금융기관에서 한평생 모았던 1억원 전액을 인출했다. 이후 인근 금은방에서 금 130돈을 구매해 보자기에 담고,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지정한 광주 북구 신안동의 숙박업소로 향하기 위해 택시에 올랐다.
택시 안에서도 A씨는 조직원과 계속 통화했는데, 여러 차례 '딸'이라고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목소리는 중년 남성의 거친 말투였다. 이를 수상히 여긴 택시 기사는 "딸이랑 통화하지만, 딸이 아닌 것 같다"며 경찰에 범죄 의심 신고를 했다.
우산지구대 경찰관들은 즉시 숙박업소로 출동해 A씨를 지구대로 안내했고, 약 1시간에 걸쳐 설득을 이어갔다. A씨는 "연락이 올 때까지 숙박업소에서 살아야 한다"며 보이스피싱이 아니라고 했지만, '전형적인 범죄 수법'이라는 경찰의 끈질긴 설득으로 화를 면했다. 경찰은 택시를 호출해 A씨를 거주지인 수녀원으로 되돌려보냈고, 택시 기사로부터 A씨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도 받았다.
한용복 북부경찰서 우산지구대장은 "조직원과 장시간 통화하면서 범죄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경찰의 말도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조직원의 말에 속은 A씨는 자칫하면 숙박업소에서 지시가 있을 때까지 나오지 않는 '셀프 감금'을 당할뻔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빠르게 범죄 의심 신고를 한 택시 기사에게 감사장을 수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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