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100일]"한미정상회담으로 무난한 첫발…신냉전 시대를 대비하라"

실용외교, 평가할 부분과 과제
최대 난제 '대미외교' 무리없이 풀어
새 역학구도, 쉽지 않은 외교 현실

지난 100일, 이재명 정부 '실용외교'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특히 임기 초 최대 난제였던 대미 관세협상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무리 없이 치러내면서 '첫발은 잘 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본격적인 시험대는 이제부터다.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행사를 계기로 북·중·러 정상이 66년 만에 한자리에 모여 이른바 '반미(反美) 연대'의 상징적 장면을 연출했다. '한·미·일' 대 '북·중·러'로 대표되는 신냉전 구도의 서막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국익과 안보를 모두 챙겨야 하는 한국에는 쉽지 않은 외교전이 될 전망이다.

특히 한반도 문제는 여전히 물꼬를 트지 못했다. 지속된 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고립된 처지였던 2017년 당시의 북한과 달리 2025년의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거대 우방국과의 결속을 과시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국제정세 흐름 속에서 맞물려 움직이는 하나의 톱니바퀴가 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앞세우고, 자신은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인식도 이에 기반한 것이다.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미국의 손을 잡고' 갔다면, 이 대통령은 '미국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가야만 한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북한이 여전히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도 고민이다. 새 정부 외교안보라인은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3대 축으로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포진했다. 그러나 대북 라인의 최전선에서 이 대통령과 직통하는 '키맨' 역할을 누가 수행하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의 경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백두혈통'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대남 메시지를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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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대북 특사' 윤건영 "남북관계 '절치부심' 자세로"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며 2018년 대북 특사로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정책) 방향을 잘 잡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북·미 사이에서 한국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이재명 정부가 '북·미 대화 우선' 기조를 내세운 데 대해서도 "옳다고 본다"며 공감을 표했다.

윤 의원은 "2018년 5·26 판문점에서 하루 만에 성사된 남북 정상회담은 북·미 회담을 앞두고 불안감을 느꼈던 김 위원장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며 "(문 전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회담"이라고 돌아봤다. 이와 비교해 "지금의 김 위원장 옆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있다"며 "윤석열 정권 3년을 거치며 한반도 상황이 완전히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윤 의원은 "지금 남북관계에 있어 이재명 정부에 필요한 것은 '절치부심'의 자세"라며 "섣불리 나서는 것보다는 북·미 정상회담을 먼저 하고, 때를 기다리면서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향후 북·미 대화 재개 요건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만나자'라는 제안 그 이상의 액션을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액션'의 구체적 의미를 묻자 윤 의원은 "(미국은) 북한의 핵에 대한 입장을 요구받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테이블에 앉기 전에 북한 핵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했던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윤 의원은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2019년 이른바 '하노이 노딜' 당시 기차를 60시간이나 타고 갔다가 면박을 당했던 만큼 트럼프 대통령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면서 "제재 완화 등은 그다음 스텝이고, 그보다 먼저 미국 대통령의 북핵에 대한 입장, 현 상황에 대한 규정을 (김 위원장이)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미외교, 불확실성의 연속… 李 정부 최대 난제

결국 한반도 문제를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 함께 풀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4강 외교'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좌충우돌' 트럼프 대통령을 다시금 움직여 한반도 문제 해법을 찾는 것은 그야말로 고차원의 난제다.


미국 사정에 밝은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한미 정상회담은 실익이 없었을지 몰라도, 큰 사고 없이 분위기 좋게 끝났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성과"라며 "이 대통령이 김 위원장 이야기를 꺼내 상당 시간을 (남북 이슈에) 할애하면서 민감 이슈를 피한 것은 정말 잘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지금의 미국은 실무급 협의가 정상까지 전달되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사실상 권위주의 국가가 됐다"고 우려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방위비·주한미군 재배치' 등 이슈는 거론되지 않은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그는 "이번 회담을 통해 얻어야 할 교훈은 소위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의제가 왜 언급되지 않았는가를 복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 교수는 "(돌이켜보면) 2기 행정부 들어 미 관료들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통해 동아시아 군사 안보 문제가 언급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군사, 안보 문제와 관련해 미 국무부·국방부 관료 발언이 곧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며 미국 정책이라고 보는 것은 크게 잘못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에는 (한미 간 외교 채널에서) 미국의 고위급 관료들이 하는 말은 이미 조율이 된 것이어서 곧 미국의 입장이라 봐도 무방했는데, 지금은 '트럼프의 생각'을 알 길이 없다"면서 "미 관료들을 만나면 반드시 '트럼프의 생각과 같은 것이 맞나'라고 반드시 질문해야 하는데, 짐작건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관료는 거의 없을 것이며 그렇다면 더 믿을 필요가 없다"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현재 상황에서는 미국 관료나 심지어 주한미군 관계자 말에 놀라거나 당황할 필요 없이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 생각과 일치하는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맞는지 반문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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