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 등 국내 대표 경제단체들이 규제 장벽을 허물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단체들은 공동으로 '기업성장포럼'을 발족하고 "성장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그에 맞게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한상의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4일 서울시 중구 롯데호텔에서 '기업성장포럼 출범식'을 열었다. 개별 대응으로는 넘기 어려운 규제 장벽을 허물고 성장하는 기업에 보상이 돌아가는 제도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겸 SK그룹 회장은 이날 기조발언에서 "기업 사이즈가 크면 클수록 규제가 커지니 기업 입장에서는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거의 없어진다"며 "대한민국 성장이 정체되고 민간의 활력이 떨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중소기업 1만개 중 4개만 중견기업으로 올라가고 중견기업 100개 중 1~2개만 대기업으로 가는 구조는 역진적 인센티브의 전형"이라며 "기업이 성장을 꺼리게 하는 구조를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청중 앞에서 국내 기업 규제 343개가 적힌 대형 패널까지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기업이 대기업 집단에 들어가면 규제가 늘어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상의와 김영주 부산대 교수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경제 관련 12개 법안에만 기업별 차등규제가 343개 있었고,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가는 순간 94개 규제가 늘며 대기업이 되면 329개까지 급증했다. 경제형벌 조항은 60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경제성장이 정체되는 배경에는 규제와 지원의 불균형이 있다"며 "중소기업은 보호받고 대기업은 규제가 늘어나는 구조가 이어지면서 민간의 활력이 급속히 떨어졌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10년간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20~30년 전에는 10%를 웃돌았지만 최근 2.6%로 급감했고, 중소기업도 8~9%대에서 5.4%로 낮아졌다. 최 회장은 "이 상태가 지속되면 모두 중소기업으로 회귀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며 "성장 기업을 지원하고 규제를 전수조사해 꼭 필요한 규제만 남기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계가 규제 개선에 의기투합하기로 한 건 최근 10년간 기업 성장세 둔화의 원인으로 계단식 규제와 과도한 경제형벌이 꼽히는 현실 때문이다. 기업들이 성장할수록 혜택은 줄고 규제가 늘어나는 역진적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게 재계의 판단이다. 이들 단체는 성장기업에 규제 예외와 성과형 지원을 제공해 기업이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해법으로 ▲규제 산업영향평가 도입 ▲시행령·시행규칙 개정 ▲첨단산업군 예외 적용 ▲'메가샌드박스'와 같은 실험적 제도 운영 등을 제시했다. 성장하는 기업에 리워드를 제공해 사회 전반에 '성장지향형 정책'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지난해 상장사 기준으로 수익성이 좋은 100개 중소기업을 중견기업 수준으로 키우면 영업이익이 5조원가량 추가 창출돼 국내총생산(GDP)의 0.2%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시중은행장 등 참석자들이 4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업성장포럼 출범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9.4 조용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이날 출범식에는 최 회장을 비롯해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 이호준 중견련 상근부회장,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박승희 삼성전자 사장, 이형희 SK 커뮤니케이션위원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박준성 LG 부사장 등 민·관·정·학계 인사 30여명이 참석했다.
구 부총리는 "최근 우리 경제가 선도 경제로의 전환이 지체되면서 잠재성장률이 크게 하락하고 있다"며 "경제형벌 합리화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연말까지 형벌 규정의 30%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송승헌 맥킨지 한국오피스 대표는 기조강연에서 "업사이드는 작고 다운사이드는 큰 구조가 기업가 정신을 억누른다"며 "정부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시장에서 안전장치와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수 목적 반도체와 생성형·에이전트·피지컬 인공지능(AI)을 새로운 성장 기회로 지목하면서 "한국이 가진 제조업 경험과 데이터 역량을 활용한다면 다시 성장을 가속화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기업성장포럼은 앞으로 분기별 1~2회 정례 포럼을 열고 기업규모별 차등규제가 기업 성장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연구해 정책 대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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