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Law]형량 감면은 미끼, 이익 반환은 족쇄…韓 '플리바게닝'의 딜레마

대검찰청 예규 " 불공정행위 취득 부당이득 '전부 반환' 해야 불기소"
'형량 결정' 법원 고유 권한 침범 지적… 부작용 방지 제도 등 보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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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조종과 부정거래 등 자본시장에서 금융 투자와 관련된 범죄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불공정거래가 날로 고도화하면서 기존 방식으로는 수사에 한계가 있고 신종 금융 범죄를 단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피해자들의 고통도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이른바 '한국형 플리바게닝'으로 불리는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도'는 피해자나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될 것처럼 여겨졌다. 자본시장법상 대표적 불공정거래행위인 미공개정보 이용, 시세조종, 사기적 부정거래에 가담한 범죄자가 자수하거나 결정적인 제보를 할 경우 형사처벌을 면제받거나 감경받을 수 있게 되면서 범죄를 규명하는 과정이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됐다.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스스로 범죄를 털어놓게 만들어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같은 플리바게닝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제보자라도 해당 불공정거래 행위를 통해 취득한 이득을 모두 반환해야만 형벌을 감면받을 수 있어서다. 범죄수익을 모두 물어내야 감형이 적용되는 것이다.


대검찰청 예규는 '검사는 공소제기 전 형벌감면을 신청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범죄 규명에 직접적이고 본질적인 기여를 하고 해당 불공정행위로 취득한 부당이득을 전부 반환한 경우에 기소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당이득을 전부 반환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일정 기간 내 반환할 것을 조건으로 불기소할 수 있어 제보자에게 이렇다 할 이득이 없는 상황이다. 적극적으로 범죄를 자수하거나 결정적인 제보를 할 정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법협조자는 범죄에 가담한 내부자가 대부분이어서 범죄수익 중 일정 부분을 취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이 취득한 이익을 전부 반환해야 한다면, 제보할 동기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 법조계 시각이다. 이 때문에 플리바게닝 제도가 안착하고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사건에 대해 제보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확실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각에선 나온다. 시행 초기 단계인 만큼 사법협조자의 범죄수익에 대해서 일부 환수를 면제하거나 신고포상금을 지급해 제보에 장애가 되는 부분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의 운영자를 신고한 경우에는 최대 2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최근에 불법 스포츠 도박 운영자를 신고한 국민에게 1억470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되기도 했다.


반면 범죄를 입증하고 처벌해야 할 검찰이 범죄자와 협상해 형을 조정한다는 것이 국민의 법 감정이나 정의의 관념에 상충한다는 반론도 있다. 또 이 제도가 범죄자의 형량을 결정하는 법원의 고유 권한을 검찰이 침범한다는 시각도 있다. 검찰이 형벌 감면·감경이라는 권한을 쥐고 진술을 조작·왜곡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이나 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플리바게닝만 도입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부장판사는 "범죄에 가담했던 피의자들이 내부 정보를 앞다퉈 수사기관에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지만, 검찰이 형사 처벌 수위를 좌우할 수 있어 검찰의 권한이 지나치게 넓게 확대된다는 지적도 있다"면서 "검찰이 형량을 두고 범죄자와 거래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얼마나 없앨 수 있느냐가 제도 안착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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