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프로젝트에서 떨어진 팀들의 성과도 잘 활용되면 좋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7월 네이버클라우드 '각 세종' 데이터센터를 찾아 마련한 현장 간담회에서 김세웅 카카오 부사장이 던진 이 한마디는 업계에서 여전히 회자된다. 현장에 있던 기업인들과 관계자들은 이 발언을 남 일처럼 듣지 않았다. 지금 살아남은 다섯 팀 중에서도 최종 결승선에 도달하는 건 2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 차례일 수 있다"는 긴장감과 함께, 탈락 기업의 인력과 성과가 사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분위기다.
카카오의 경우 5개 정예팀에 들지 못한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컨소시엄을 폭넓게 꾸리지 않고 사실상 단독 지원에 가까운 방식으로 참여해 평가 지표에서 불리했다. 또 카카오톡 메시지 데이터를 모델 학습에 활용할 경우 개인정보 리스크가 크고 사업성도 불투명하다고 본 탓에 애초부터 소극적이었다는 말도 나온다. 그럼에도 "너무 일찍 떨어진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 일부에서 제기됐다. 최종 결과 발표 전이었지만, 마치 뽑히지 못할 가능성을 예견한 듯한 김 부사장의 발언은 이후 다른 기업들에도 묘한 울림을 남겼다.
프로젝트에 남아 있는 팀들 역시 긴장 속에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최종에서 탈락하면 지금까지의 투자가 단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참여 기업들이 모두 업계 최고 수준의 연구 인력을 갖췄는데, 도중에 중단된다면 활용할 길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형 모델만으로는 경쟁이 쉽지 않아, 경량화·에이전트·반도체 최적화 같은 성과로도 가치가 남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국가대표 AI'를 다짐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탈락 이후를 대비한 전략까지 동시에 고민하는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후속 참여 방안이나 성과 공유 같은 아이디어가 꾸준히 거론된다. 탈락 기업의 인력을 다른 팀에 합류시키거나, 연구 성과를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자산화하는 방식이다. "어쨌든 모두가 귀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한 만큼, 성과를 흘려보내지 말고 함께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 이유다. 지난달 각 세종 현장 간담회에서도 이런 제언이 나오자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도 즉각 공감을 표했다.
배 장관은 "15개사가 지원했는데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전향적으로 고민하고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떨어진 기업의 자산을 어떻게든 생태계에 편입시키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단순히 줄 세우기식 선발에만 집중하지 않고, 이후의 활용 방안까지 고민하는 건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프로젝트는 단순히 '다섯 팀의 경쟁'으로만 볼 수 없다. 탈락이 곧 끝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또 다른 기회와 연결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게 정부와 업계의 과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중요한 건 누가 최종에 살아남느냐가 아니라, 남겨진 성과를 한국 AI 전체가 어떻게 공유하느냐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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