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만 했다."
한국 기업들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1500억달러(약 208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대미 직접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퍼주기 외교'라는 야당의 비판이 거세다. 정부가 지난달 미국과의 관세 협상 때 이미 3500억달러 규모의 투자 협력 펀드를 만들어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터라 한국의 대표 기업들을 앞세워 투자 보따리만 풀고 온 게 아니냐는 우려가 담겨 있다.
미국에 통 큰 투자를 약속한 사이 한국에 진출한 외국투자기업들은 철수를 고민했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한국은 외투기업들의 엑소더스(대탈출)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최근 약 600개의 외국계 회원사를 가진 주한외국기업연합회(KOFA)가 외투기업 100곳을 대상으로 '노조법 개정 이후 한국 내 투자계획 변화'를 물었을 때 응답 기업의 35.6%가 "투자 축소 또는 한국 지사 철수를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미국처럼 관세를 빌미로 투자를 압박할 수도, 일본이나 중국처럼 파격적인 보조금과 세제 혜택 카드를 꺼내 들지도 못하는 한계가 있다.
겉으로 보면 외국 기업이 한국 철수를 고민하는 시점에 우리 기업이 해외에 거액을 투자하는 것이 불균형적인 상황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투자를 단순한 자금의 이전 구도로 봤을 때만 그렇다. '퍼주기 외교' 지적은 해외투자가 시장 점유율 확대 및 공급망 강화로 이어져 기업의 성장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해외 투자를 고액 지출로 보지 않고 글로벌 제조 공급망 중심으로의 전략적 진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첨단산업군에서 미국 내 생산기지 확보는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다. 퍼주기 우려를 접고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 효과가 향후 한국 경제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세심한 전략을 짜는 데 집중해야 한다.
물론 세계적인 미국 투자 쏠림 현상 때문에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외국계 기업의 투자 공백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은 우리 정부가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다. 투자가 경제성장 속도를 끌어올릴 마중물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국은 이미 투자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신고액 기준 지난해 345억7000만달러의 최대 실적을 냈지만 실제 투자가 이뤄진 금액은 147억7000만달러로 오히려 24% 줄었다. 작년 12월 계엄 사태로 인한 국내 정치적 불안정성과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외국계 기업들이 한국 투자 실행을 보류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올해 상반기 FDI 신고액도 131억달러로 1년 전보다 14.6% 감소했다.
다만 이는 외국계 기업들이 한국 투자에 있어 예측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법 적용의 모호함을 유지하며, 국내 기업과의 경쟁에서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투자 외교의 전략적 설계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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