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만 해도 '반도체 불장'을 맞았던 경기도 평택시 아파트 시장이 최근 전국에서 최악의 가격 하락 지역으로 전락했다. 올해 누적 하락률이 -5%를 넘어서며 전국 시군구 중 가장 깊은 낙폭을 기록 중이다. 분양권 시장에서는 수천만 원 낮게 되파는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구조적 공급 과잉과 수요 위축으로 당분간 반등은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7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 셋째 주까지 평택시 아파트 매매가격은 누적 -5.36%를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국 시군구 중 가장 큰 하락 폭이다. 2022년(-4.11%), 2023년(-4.89%), 지난해(-2.39%)보다도 더 크다. 6·27 대출규제 이후 하락세가 가팔라지면서, 8월 셋째 주에는 -0.27%로 올해 최대 주간 낙폭을 기록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고덕신도시 '고덕자연앤자이' 전용 84㎡는 지난 19일 5억5300만 원에 손바뀜됐다. 전고점(2021년 9월 9억원)과 비교하면 38% 떨어졌다. '평택비전레이크푸르지오'도 2022년 4월 8억8000만원에서 올해 7월 5억2600만원으로 39% 추락했다. 고덕국제신도시제일풍경채(9억2700만원→5억8800만원, -36%), 평택고덕파라곤(9억8000만원→6억4000만원, -34%) 등도 전고점 대비 30~40% 가까이 떨어졌다.
분양권 시장에서는 '마피'가 붙지 않은 물건을 찾아보기 힘들다. 신규 입주 예정 단지들이 줄줄이 분양가보다 수천만 원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e편한세상 평택 하이센트' 전용 84㎡ 분양권은 지난 8일 3억9159만원에 거래됐다. 분양가(4억5270만원)와 비교하면 6000만원가량 하락했다. '평택화양 휴먼빌 퍼스트시티'도 59㎡ 분양권이 지난 18일 2억9035만원에 거래되며 분양가(3억2000만원대)보다 약 3000만원 낮게 거래됐다.
4년 전만해도 평택은 전국 부동산 상승률 최상위권 지역이었다. 2021년 연간 아파트값 상승률은 26.53%를 기록했다. 고덕신도시·지제역세권은 청약 열풍이 뜨거웠고, 분양권 프리미엄 거래가 줄을 이었다. 당시 주요 단지 84㎡ 분양권은 9억원을 넘나들었고, 웃돈(프리미엄) 1억원이 넘는 거래가 빈번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C노선 연장 추진, 지제역 복합환승센터, 삼성 반도체 캠퍼스 단계적 증설 발표 등 호재가 몰리며 실수요와 투기 수요가 동반 유입됐다.
그러나 공급이 폭증한 상황에서 호재가 소멸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평택시의 적정 주택 수요는 연간 3000가구 수준이지만, 매년 수요의 2~5배에 달하는 입주 물량이 공급됐다. 올해도 1만10가구가 입주를 진행하고 있다. 2026년 7581가구, 2027년에는 1만322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입주 물량은 급증하는데 GTX 사업과 삼성전자 P5 캠퍼스 착공 지연 등으로 수요 기대는 확 줄었다. 청약 경쟁률은 뚝 떨어졌고 미분양은 빠르게 쌓이고 있다. 6월 말 기준 평택시 미분양 주택은 3996가구로, 경기도 전체(1만1093가구)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은 "삼성전자 반도체 호재에 기반한 평택의 광풍은 가격 '선반영'이었다"며 "공급이 집중된 상황에서 실수요 회복이 지연되면 마피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미 분양받은 사람들의 자금 압박이 커지면서 일부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매도에 나서고 있다"며 "입주가 임박한 단지 중심으로 가격 조정이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