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면서 국내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국회에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는 가운데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대한 긍정 여론과 부정 여론의 대립도 보다 극명해지고 있다.
26일 국회 및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발의된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은 민병덕, 안도걸,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 등이 각각 발의해 총 4건에 달한다. 법안 대부분은 발행 주체를 은행으로 놓고 자기자본 역시 최소 50억원 이상으로 한정하는 등 다소 엄격한 규정을 내세웠다. 민 의원이 유일하게 자기자본 5억원 이상 사업자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게 했다. 국회에서 여러 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금융위원회도 연내 정부안 발표를 준비하는 등 법제화 추진은 이어지는 중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법제화가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도입을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에 따른 가장 큰 우려는 금융안정성 저하와 통화정책의 효력 감소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 5월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국채금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될 경우 단기국채 금리를 낮추는 결과가 나타났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으로 5일간 약 35억달러(4조8500억원)가 유입될 경우 10일 이내에 3개월 국채 금리가 0.02~0.025%포인트 하락했다. 송태원 예금보험공사 디지털금융팀장은 "이와 같은 영향은 소규모 양적완화(QE)가 장기국채 금리에 미치는 영향과 유사한 수준"이라며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단기국채 시장에서 실질적인 시장 참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자금 유출이 발생할 경우 국채금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커졌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35억달러의 자금이 5일 동안 유출될 경우 3개월 단기 국채 금리는 10일 이내에 약 0.06~0.08%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코인런 발생 시 금융시장 충격이 매우 클 수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
결국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확대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시장금리에 영향을 미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실효성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송 팀장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확대될수록 단기금리에 미치는 영향은 비선형적으로 증대된다"며 "이는 통화정책의 전달 경로를 복잡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통화정책의 효력을 약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이 시중은행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나이스신용평가는 25일 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으로 자금이 이동할 경우 은행의 예금기반이 축소되고, 중개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특히 은행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자가 아닌 준비금 수탁기관의 역할에 머무를 경우 예금 유치를 위한 조달 비용이 상승하고, 순이자마진이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정현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은행은 송금 및 결제 영역에서 스테이블코인 기반의 저렴한 서비스와의 경쟁이 불가피해지면서 기존 수수료 수익이 감소할 수 있다"며 "은행의 수신기반 약화, 이자 및 수수료 수익 감소 등으로 수익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스테이블코인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는 가운데 국내 시장에 적극 도입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자는 긍정적인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는 중이다. 스테이블코인의 큰 장점은 국제 송금의 편리성과 낮은 결제 수수료, 다양한 금융 인프라 창출 등이 꼽힌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준비하는 안도걸 민주당 의원은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이 디지털경제로 발 빠르게 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해 글로벌 지급결제수단을 마련하고, 통화 주권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 의원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국제적 통용을 통해 원화 국제화와 글로벌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며 "잘 설계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지급결제 비용 감소, 은행 간 실시간 결제 등 국내 금융인프라의 효율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핀테크 업종을 중심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은행뿐 아니라 다양하게 허용해 생태계를 넓혀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병규 네이버페이 혁신성장지원실 이사는 지난주 열린 국회 세미나에서 "스테이블코인이 특정 업종의 폐쇄적 구조가 아닌 다양한 기술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비은행권에 대한 개방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스테이블코인이 인플레이션 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융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을 상회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 스테이블 코인이 의외로 통화량 확대를 제한하며 인플레이션 안정화 기능을 일부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간 화폐 발행이 인플레이션 안정을 이끈다는 과거 연구 결과가 있다"며 "19세기 미국 자유 은행 시대를 사례로 들며 당시 인플레이션이 낮은 수준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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