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산의 모습을 보고 그 산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인 생김새와 그 형상을 보고 그 산의 수려함이나 특성을 말한다. 거기에 어떤 나무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산이 품고 있는 나무들은 그 산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잡목이 많은 산과, 소위 좋은 나무들이 많은 산은 그 내용 면에서 확연히 다르다. 게다가 숲속에 병충해나 관리 소홀로 병든 나무들이 많다면, 그것들을 치유하거나 신속히 정리하는 것이 훌륭한 숲, 수려한 산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하다. 산과 숲, 그리고 나무는 하나의 묶음이다.
경제도 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경제 회복의 징후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전례가 드문 획기적인 정책을 국민들은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미·중·러·일과의 최적의 관계 설정이 쉽지 않아 보이고, 최근 북한의 태도를 봐서는 남북 관계도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이런 요소들 역시 우리 경제의 회생에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환율이 조금씩 오르고는 있지만, 국내 금융시장은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외국인들은 이제 북한 리스크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가 아닐까. 물론 근래 북한의 움직임을 보면, 한반도에 긴장의 징후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우선 금융시장 안정의 척도인 외화 유동성에 큰 문제가 없고, 세계 경제의 흐름도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 때문에 적어도 한국 경제는 바닥을 지나고 있거나, 전반적인 산업이 골고루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도체 가격의 회복세, 자동차 판매량의 증가, 조선업의 기지개 등이 그것을 방증한다. 다만 새 정부 들어 '노란봉투법'이나 상법 개정안 등, 대기업들의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는 법안들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전반적으로 한국호는 평온한 숲속에서 기분 좋게 등산을 준비 중인 모습이지만, 내부에 큰 복병들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 경제가 수월하게 산을 오르기에는 난관이 많다.
특히 새 정부 스스로가 '경제 장벽 쌓기'에 적극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고율의 관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로 인한 직격탄을 우리가 맞고 있는 것도 큰 걱정이다. 미국과의 관세 전쟁은 정부가 외교적으로 슬기롭게 풀어가야 한다. 그것은 정부의 최우선 책무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최근 정부가 나서서 미국과의 관세 문제를 잘 해결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들과 기업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사실과는 상당 부분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계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가속력을 붙일만한 동인이 없는 것도 문제다. 지금 시중에는 유동자금이 넘쳐나고 있지만, 주식과 부동산에만 돈이 몰릴 뿐 투자 부문과는 유리되어 있다. 패닉 상태에서는 벗어났을지 모르나, 여전히 불황의 터널 속에 갇혀 있을 뿐이다.
설령 실물경제가 나아지고 있다 하더라도, 뚜렷한 징후는 거의 없다. 지역 상권이 무너지고 있고,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금융시장도 언제 터질지 모른다. 현 경제 상황에 대한 경제팀의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다. 그것은 그동안의 경제 위기 치유 과정에서 동원됐던 단순한 정책들을 넘어서는, '경제 회생기'에 적합한 정책을 준비하고 내놓는 데 필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이제껏 공격적으로 돈을 풀고 재정 지출을 늘려보자는 식은 오래가기 어렵다고 본다. 기업이 살아나고 고용이 창출되면서, 그것이 수요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중요하다. 민생 지원 등을 통한 재정 확대는 실물 경기 회복은커녕 물가에 큰 부담만 줄 것이다.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에 대해서도 눈을 떼지 말아야 하고, 글로벌 금리 동반 하락 기류도 큰 복병이다. 세계 금리 하락 흐름은 자칫 기업·가계의 부채 증대를 통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훌륭한 숲을 좋은 나무들이 만들 듯, 양호한 기업들이 경제를 구성할 수 있도록 그 체질 개선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경제팀의 강력한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비정규직 해고 대란이 뻔한 상황에서, 노란봉투법 등은 그 시행 시기를 적절히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노조든 근로자든, 기업과 함께 성장하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경제 문제가 이념 대결이나 노사 힘겨루기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대외 의존도 완화와 내수 진작 차원에서 교육, 의료 등 서비스 산업의 조직적 육성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내부에 꺼지지 않는 불씨의 잔재들도 하나씩 걷어내야 한다.
이제껏 경제 위기라는 급한 불을 끄는 데 급급했다면, 이제는 경제를 본격적으로 회생시키는 데 가속도를 붙여야 한다. 경제팀 스스로가 경제 회복이 본격화되도록 정책을 더 정비하고,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최해범 창원대 전 총장·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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