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바람·화재 위험…‘규정 위반 실외기’ 도심 곳곳 방치

흡연구역 앞 화재 위험 도사려
민원 처리 한계, 처벌 규정 미비

최근 주택가와 골목 곳곳에 마구잡이 설치돼 뜨거운 바람을 내뿜는 에어컨 실외기 때문에 시민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설치 규정은 마련돼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관리·감독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 화재에도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서울 마포구 한 주택가에 설치된 규정 위반 실외기. 최영찬 기자

서울 마포구 한 주택가에 설치된 규정 위반 실외기. 최영찬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지난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박모씨(34)는 "안 그래도 푹푹 찌는데 실외기 앞을 지날 때마다 짜증난다"며 인상을 찌푸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실제 서울 시내 주택가를 둘러보니 설치 규정을 지키지 않은 실외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일부는 바람 방향을 위나 아래로 바꿔주는 '에어가드'조차 달지 않아 열기가 그대로 보행자에게 닿았다.

특히 흡연구역 앞이나 가연성 물질 옆에 놓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 오피스텔 흡연구역에는 10여 대의 실외기가 밀집 설치돼 있었고, 흡연자들이 실외기 앞에서 흡연 후 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있었다.


현행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은 실외기를 도로면으로부터 2m 이상 높이로 설치하거나 열기가 거주자나 보행자에게 직접 닿지 않도록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설치하는 실외기를 일일이 단속하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어 불법 설치가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2006년 이후 지어진 공동주택에는 실외기를 실내 공간에 두도록 의무화됐지만, 그 이전에 지어진 주택은 설치 공간 확보가 쉽지 않다. 정부는 2019년부터 일반 건축물에도 건축심의 단계에서 별도의 실외기 공간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으나, 제도 정착에는 시간이 걸린다. 한 구청 관계자는 "모든 실외기를 단속할 수는 없지만 민원이 접수되면 즉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설령 불법 설치 여부가 확인되더라도 설치 주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는 점도 문제다. 서울시 관계자는 "실외기는 개인 가전제품이라 현행법상 별도의 처벌 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