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 사이에서 '5성급 호텔'과 '명품 가방'이 새로운 청혼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레스토랑에서 반지나 꽃다발을 주고받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청년층의 과시 욕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증 문화와 맞물리며 '초호화 프러포즈'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양수진 성신여대 소비자산업학과 부교수 연구팀은 최신 논문 '밀레니얼 청년들의 프러포즈 문화 속 명품의 의미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젊은 세대의 프러포즈 문화가 5성급 호텔과 명품 가방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지난해 9월 1일부터 15일까지 인스타그램에서 '프러포즈'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글 128건을 조사했다. 그 결과, 프러포즈 장소로는 호텔이 55건(42%)으로 가장 많았다. 이 가운데 38건은 호텔명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었으며, 그중 17곳이 5성급 호텔이었다. 특히 서울 잠실의 5성급 호텔 '시그니엘'을 이용한 경우에는 '99층', '93층'처럼 구체적인 층수를 표시한 경우도 있었다. 연구팀은 "등급을 나누기 위해 층수까지 게시하는 형태"라며 "남들과는 다른 부를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물 중에서는 명품 가방이 가장 많이 등장했다. 관련 게시글 38건 가운데 '샤넬'이 19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른 예물 중에서는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13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연구팀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프러포즈 사진 대부분이 꽃장식, 풍선, 촛불, 현수막으로 꾸며진 공간에 명품 브랜드 제품이 함께 진열된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호텔이나 외제 차 등 고급 배경과 물품이 함께 등장할 때 과시적 소비 행태는 더욱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흐름은 젊은층에서 더욱 뚜렷하다. SNS를 통한 자기과시와 사회적 인정 욕구가 결합하며, 다른 세대보다 프러포즈 자체를 더 중요한 의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리서치의 '2025년 결혼인식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 1000명 중 45%가 '프러포즈 이벤트는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18~29세 청년층에서는 그 비율이 55%로 더 높았다.
그러나 초호화 프러포즈가 혼인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3년 '결혼식 전 비싼 장애물: 4500달러(약 600만원)짜리 청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고급 호텔에서 큰돈을 들여 프러포즈 하는 트렌드는 연인들에게 압박으로 작용한다"며 "혼인율에도 도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청년층의 현실을 감안하면 초호화 프러포즈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3.9세·여성 31.6세로, 사회에 막 진출했거나 자산을 쌓아가는 단계에서 하루 수백만 원을 지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더욱이 5성급 호텔을 배경으로 한 이벤트나 명품 예물이 필수 요소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는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청년들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오는 11월 결혼을 앞둔 직장인 한유지씨(29)는 "비싼 장소에서 화려하게 프러포즈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진심이 담겨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며 "프러포즈는 남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두 사람만 만족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호텔 프러포즈가 하나의 문화처럼 굳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자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도 나온다. 결혼식 자체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 프러포즈까지 과도한 지출이 요구되면서 재정적 압박이 한층 가중됐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연구소의 '대한민국 금융소비자 보고서 2025'에 따르면 결혼 의향이 없는 미혼자는 비혼을 택한 이유로 '경제적 여건'(47.1%)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나의 가치관/의지'(44.7%), 사회생활 여건(21.2%), 인간관계 영향(17.3%) 등의 순이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나타나는 청년층의 과시적 소비 행태를 완화하기 위해선 SNS 문해(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구팀은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무분별하게 게시물을 받아들일 시 예상되는 심리적 악영향이 매우 크다"며 "미성년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에게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SNS 문해 교육을 통해 과시적인 소비 행태를 다루는 게시물에 대한 사용자의 분별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