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는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시청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다. 디즈니가 최근 5년간 집중하고도 실패한 여성 중심의 서사를 새롭게 펼쳐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전면에는 악령과 싸우는 K팝 걸그룹이 있다. 사회적 책임을 짊어지기 시작하는 젊은 세대의 시각과 관점으로 폭넓은 공감대를 끌어낸다.
'케데헌'은 걸그룹 헌트릭스의 리더 루미 몸에 악령의 문양이 퍼지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그녀의 부모가 악령과 악령 사냥꾼이라서 생긴 고민이다. 기존 잣대로 보면 악령으로 해석돼 멤버들에게까지 숨겨가며 인간들을 지킨다.
PC(political correctness) 주의에 얽매여 나타나는 답보다. 그녀가 보는 세상은 이분법적이다. 개인과 사회, 원래 있는 그대로와 왜곡된 상태 등의 개념이 서로 대립해 있다. 이런 사고로 절대 악에 맞서 싸우면 오류가 발생한다. 악과 맞서 싸우지 않거나 강자의 편을 드는 존재가 악의 하수인으로 간주돼 탄압의 대상이 된다.
루미에게는 진우가 그런 존재이고, 그녀 자신도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악령의 문양 때문에 내면의 맥락과 관계없이 제거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처럼 위험한 사고를 주입한 인물은 이전 세대의 헌터인 셀린이다. 오래전부터 "너 자신을 드러내면 안 된다"라고 강요하며 루미를 압박한다.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틀에 필연적으로 맞춰야 하는 젊은 세대의 처지와 매우 흡사하다.
매기 강 감독은 해방의 열쇠로 초월적인 '나'를 제시한다. 루미가 이질성을 발현해 일으키는 균열 속에서 새로운 진리를 찾게 한다. 깨우침 속에서 루미는 나답게 만드는 요소들을 우선순위에 올려두고, 그것을 얻어야 세상이 특별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영속적인 것을 많이 얻어도 나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면 '좋은 것'이 될 수 없다는 새로운 담론이다.
'케데헌'은 루미를 중심으로 자아가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색깔은 전통적인 영웅 서사와 다르다. 여성들의 우정이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을 주면서도 한계를 드러낸다. 루미가 조이나 미라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지 못하면서 고립감에 빠진다.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악령이자 남성인 진우를 만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인다. 그만이 악령으로서 사는 것의 무게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조이와 미라 역시 불안을 숨기고 있다.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지 못해 귀마와의 싸움에서 밀린다. 스스로 문제를 극복할 줄 모르는 이들에게 손을 건네는 인물은 다름 아닌 루미다. '왓 잇 사운즈 라이크(What It Sounds Like)'라는 곡으로 정체성을 확립할 힘을 불어넣는다.
"나는 산산조각이 났고, 다시 돌아갈 수 없어 / 하지만 이제는 깨진 유리 조각 안에서도 아름다움을 봐 / 상처는 내 일부야, 어둠과 조화 속에서 살아있지 / 거짓 없는 내 목소리, 이게 바로 나의 소리야 / 왜 내 머릿속에 갇힌 색들을 감췄을까 / 날카로운 모서리들이 빛을 만나게 해야 했는데 / 그 속에 숨은 걸 보여줘, 너의 조화를 찾을게."
대전환에는 군중을 대변하는 팬덤도 합세한다. 중반까지는 실체를 판단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린다. 헌트릭스의 화려한 무대에 뜨겁게 호응하다가도, 사자보이즈가 색다른 노래와 안무를 선보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시선을 빼앗긴다. 하지만 루미의 '왓 잇 사운즈 라이크'에 감화돼 각성하면서 헌트릭스에게 귀마를 물리칠 힘을 불어넣는다.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다.
'케데헌'이 한국적 정체성을 구현한 배경에는 한국계 제작진의 문화적 경험이 있다. 다섯 살에 캐나다로 이주한 매기 강 감독은 9년 넘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국의 요괴 신화와 설화를 탐구하는 이야기에 강렬한 여성 인물들을 배치하고자 했다. 초기에는 저예산의 거칠고 어두운 애니메이션으로 구상했으나 K팝의 발전을 눈여겨보면서 작품의 혼종적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K팝 아이돌의 기원으로 무속인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전면 수정했다. 그는 "음악과 춤으로 요괴를 물리치는 굿에서 K팝과의 공통분모를 발견했다. 무당이 거의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 영웅 서사와의 연결고리도 찾았다"며 "굿을 최초의 콘서트라고 봐도 무방할 듯했다"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무당은 종합예술인이자 치유자다. 의학과 과학이 충분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던 시대에 공동체의 아픔과 위기에 공감하며 해결책을 모색했다. 이런 맥락에서 K팝과 무속의 결합은 단순한 한국적 소재 활용을 넘어, 주변화됐던 여성 종합예술가가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보편적 서사로 연결될 여지가 있다.
강 감독은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K팝 문화의 정수를 정확히 포착했다. 특히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의 무대 연출은 디자인부터 퍼포먼스, 화면 구도, 조명까지 모든 요소가 실제 K팝과 구별되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귀여운 외모의 멤버가 저음의 랩을 구사하는 반전, 예능에서 과격한 미션을 수행하다 돌연 애교를 부리는 모습, 청량한 데뷔 콘셉트에서 섹시한 컴백 노선으로 변화하는 과정 등 K팝 특유의 다면성도 잘 나타난다.
음악적 완성도 또한 주목할 만하다. '골든(Golden)'은 결점과 타인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프리(Free)'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 들여주는 사람과의 연결을, '왓 잇 사운즈 라이크'는 단점을 인정하되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각각 내포한다. 하나같이 중독성 있는 팝 비트와 어우러져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각적인 노력은 완벽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 이어진다. 수치심이나 두려움 같은 부정적 감정도 적절히 활용하면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케데헌'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K팝 열풍이 정점에 달한 시기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팬덤에만 의존하지 않는 보편적 서사를 구축해낸 전략이 주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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