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원 의사 6명 중 3명이 의·정 갈등으로 사직한 전공의들이에요. 곧 기존에 일하던 수련병원으로 복귀한다고 하니 후임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도권도 아닌 지방에서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볼 의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어요."
대전의 한 소아청소년병원 대표원장의 말이다. 소아 응급·중증의료가 무너진 배경엔 소아청소년과 의사 구인난이 자리하고 있고 그 이면에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이 도사리고 있다. 사법리스크와 저수가에 신진 의사들은 소아청소년과 수련을, 보드를 딴 전문의는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이 심각한 이유는 낮은 의료수가와 사법리스크, 저출산 등의 문제가 손꼽힌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낮아진 원인'으로 응답자의 90%가 '낮은 의료수가'를 꼽았다. 이어 '의료사고의 위험(사법리스크)'과 '저출산'이 각각 80%와 70%로 뒤를 이었다.
소아청소년과는 저수가로 진료 원가만큼도 건강보험에 의해 보전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과 중 하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진료 원가 보전율은 약 79% 수준에 그친다.
특히 소아 진료라는 특성상 비급여 진료가 거의 없다는 점도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02년 원가 이하의 수가는 위헌이라는 의료계의 소송에 '비급여 진료비를 통해 이익을 추구할 수 있으므로 당연지정제를 통한 수가의 통제가 어느 정도 정당화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원가 이하의 수가에 따른 손실을 메꿀 비급여 진료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이에 일선 소아청소년병원들은 정부의 추가 지원 대책에 기대 운영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소아청소년 전문병원을 운영하는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정성관 이사장은 "'소아진료 지역협력체계 구축 시범사업'과 '필수특화 기능 강화 지원사업' '달빛어린이병원 사업' 등을 통한 지원을 통해 손실을 보전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은 중증 소아환자를 보는 상급종합병원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소아암 치료를 위해 항암제를 맞는 소아환자의 경우 혈관이나 근육, 척수강에 정확히 투여하기 위해 의료진 4~5명이 달라붙어 팔다리 고정하느라 애를 써야 하지만 연령가산이 전혀 되지 않아 병원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는 구조다.
연령가산 기준이 만 15세를 넘지 않는 점도 문제다. 김혜리 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는 "소아암, 그중에서도 백혈병의 경우 중고등학교 나이에 발병해 2~3년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현행 수가 체계에선 치료를 시작하고 만 15세가 넘어가면 연령가산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사망' 사건 이후 사법리스크가 커진 것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시 의료진 7명 모두에게 무죄가 선고되긴 했지만 교수와 전공의 등이 구속되는 모습 등은 의료계에 큰 충격을 가했고 이후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소아청소년과 사법리스크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울산지법 민사12부(이연진 부장판사)는 지난달 25일 신생아의 뇌 기능이 손상돼 장애를 갖게 된 사고와 관련해 병원 측이 16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런 의료진의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 대부분은 당시 상황에선 최선의 의학적 판단이었고, 그 결과에 대해 의사에게 과도한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은 결국 진료 기피와 진료 공백, 필수의료 붕괴를 초래한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소아응급의학 전문의인 이주영 개혁신당 국회의원은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과 별개로 의료진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설명 의무 위반'이라고 하면 어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도 감수하지 못한다"며 "이런 판결이 계속 나온다면 어떤 인턴도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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