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저출산 문제, 보육부담 완화 집중…노동시장 근본 변화 필요"

2025 세계경제학자대회 '가족 정책과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
저출산, 노동시장 구조·사회적 규범 등 총체적 관점서 이해해야
"장시간 노동 문제, 근무 방식·시간 조정 등 들여다볼 필요"

"출산율 문제는 경제적 부담뿐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사회적 규범, 부모가 되는 일에 대한 인식까지 포함해 다뤄야 한다."

황지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사진 가운데)가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세계경제학자대회에서 '가족 정책과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황지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사진 가운데)가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세계경제학자대회에서 '가족 정책과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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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세계경제학자대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황 교수는 202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제자로 출산율, 가족정책,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 건강과 고용 간의 연계성 등에 대해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가족 정책과 노동시장 내 성별 격차'를 주제로 한 세션에서 황 교수는 "과거에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출산 사이에 명확한 '트레이드오프(상충관계)'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노동시장 구조, 가족 정책, 성 역할에 대한 인식 등에 따라 그 관계가 약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가정 양립이 얼마나 수월한 환경인지에 따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출산율 모두 높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더 복잡하다. 황 교수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부 고소득 국가에서 출산율이 더욱 빠르게 하락한 이유로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가족과 성 역할에 대한 사회 규범은 느리게 변화하면서 인식의 괴리가 심화한 점 ▲높은 주거 비용과 고용 불안정이 젊은 세대의 결혼과 출산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점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압박, 즉 강도 높은 양육 문화와 교육열이 출산 자체를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삶의 우선순위 자체가 변화하면서 자기 계발과 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하는 흐름이 확산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황 교수는 이런 요인들이 각각 따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상호 연결돼 출산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다. 그는 "출산율 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부담의 관점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사회적 규범, 부모가 되는 데 대한 인식까지 포함한 총체적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무자녀 증가 현상은 단순한 저출산과는 구분되는 요인에서 비롯될 수 있다"며 "그 사회적 함의 또한 다를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여성에게 집중된 육아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선 노동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는 쪽으로 정책이 더 발전해야 한다고 봤다. '남성(아버지) 육아휴직' 등을 통해 배우자를 양육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방식 역시 언급됐으나, 이는 저출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황 교수는 "한국의 경우 지금까지 정책은 공공 보육이나 육아휴직 등 보육 부담을 줄이는 데 집중됐고, 노동시장 측면에서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며 "장시간 노동이나 재택근무, 근무 시간 조정과 같은 근본적인 변화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아이를 장시간 보육 시설에 맡기는 것이 부모들이 원하는 일·가정 양립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 역할에 대한 사회 규범 변화 역시 큰 도전 과제로 꼽았다. 그는 "경제 발전 속도와 사회 규범 간 불일치로 한국의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에 비해 전통적 성별 태도가 훨씬 적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기 편치 않은 분위기가 남아있다"며 "본인이 원해도 주변 사람들, 특히 윗세대와의 상호작용 때문에 실천이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세션에서 제시카 팬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는 왜 성별 격차가 여전히 존재하는지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관점, 남녀 간 본질적인 성향 차이와 구조적 제약을 들어 설명했다. 선호도, 기술, 심리적 특성 등 남녀 간 본질적인 성향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주장과, 가족 책임, 사회적 규범, 차별 등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유사한 역량을 가진 여성이 다른 결과를 겪고 있다는 관점이 있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성별 격차는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이 개입이 필요하다. 팬 교수는 "엄마는 일과 육아를 모두 해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은 아직도 강고하며,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높아질수록 규범의 저항도 함께 강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과 가정의 병행을 여성만의 문제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 구조적 원인과 규범의 작동 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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