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노란봉투법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며 입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법안의 핵심은 직접 고용계약이 없어도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한다면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부당노동행위 책임 역시 원청에 미칠 수 있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노동 친화적 정책으로 꼽히며, 오랫동안 한국 노조 단체들의 숙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하청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조선 업계는 직격탄이 우려된다. 자동차 산업은 부품 대부분이 원·하청 협업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청업체의 쟁의와 협약 요구가 이어질 경우 생산 라인이 멈출 수 있고, 경쟁력 약화로 직결될 수 있다. 조선·해양 분야 역시 파업에 따른 생산 지연이 누적되면 수주 경쟁에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노란봉투법 논의는 제조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AI·반도체 등 첨단 산업과 플랫폼 사업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경쟁이 치열하고 마진이 낮은 플랫폼·IT 시장에서는 교섭을 통한 노동비용 상승을 기업이 전부 흡수하기 어렵다. 결국 가격 인상, 배송·배차 속도 조정, 서비스 축소 등 형태로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택시 노조가 카카오모빌리티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받는다면 교섭을 통해 수수료 인하를 요구할 수 있고, 그 경우 감소한 수익이 요금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배달 플랫폼도 예외가 아니다. 안전을 이유로 배달 시간을 늘리고 배달비 인상을 요구한다면, 기업은 비용을 전적으로 떠안을 수 없어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배달 지연과 가격 상승을 감수해야 한다. 비용 전가가 여의치 않다면 신규 라이더 고용과 투자도 보수적으로 변해 소비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부정적 영향이 돌아갈 수 있다.
소프트웨어·AI 기업도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IT 프로젝트는 분권화된 구조와 빠른 팀 스케일링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기본 업무는 외주로 처리하고 원청은 핵심 역량에 집중해 속도를 내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사용자 개념이 과도하게 확대되면 상시 정규 인력 유지 압력이 커진다. 조직이 비대·경직되어 혁신 속도가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글로벌 투자와 입지 경쟁 측면에서도 위험은 있다. 한국의 규제·분쟁 리스크가 높다고 판단되면 싱가포르, 홍콩, 중국 등 대체지가 존재하는 만큼 자본과 프로젝트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유인이 커진다. 특히 속도와 스케일이 성패를 좌우하는 반도체·AI 분야에서는 작은 마찰이 누적돼도 기회의 창을 놓치기 쉽다. 실제로 최근 주한유럽상공회의소가 법안의 재검토를 요구했는데, 이는 해외 투자 위축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노란봉투법은 취약한 고용형태의 권리 보장과 책임의 정렬이라는 분명한 공익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른 리스크 역시 무겁다. 입법 과정에서 정책 설계를 더욱 정교하게 하고, 산업별로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 고위험 영역에는 강한 보호와 의무를 적용하되, 저위험·단기 프로젝트에는 간소화된 절차를 부여해 혁신 속도를 보전해야 한다.
프리랜서·플랫폼 종사자에게는 유연한 보험 제도를 도입해 기본적 보호를 보장하면서도, 플랫폼 기업과 첨단 기술 산업은 인력 이동의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숨통을 터줘야 한다. 획일적 전통 규제가 아니라 산업 특성과 발전 속도에 맞는 정교한 차등 설계가 이뤄질 때, 노란봉투법은 진정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경나경 싱가포르국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