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자동차보험, 무분별한 과잉 치료 막아야 한다

일부 악용에 선량한 계약자 피해
합당 치료 보장·과잉진료 차단 추진

김선정 동국대 법학과 특임교수(전 한국보험법학회장)

김선정 동국대 법학과 특임교수(전 한국보험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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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를 바꾸던 차량이 직진하던 차량과 부딪힐 뻔해 급정거했다. 다행히 충돌을 피했다. 그런데 뚜렷한 부상이 없는 상대편 차량 운전자는 이 일로 500일간 통원 치료를 받았고 보험금으로 받은 치료비는 2000만원에 달했다. 주차장에서 후진 중에 주차된 차량의 범퍼를 긁어서 기스가 났다. 이 일로 상대편 차량 운전자는 150일간 통원치료를 받았고 보험금으로 받은 치료비는 1400만 원에 달했다. 이 사례들은 지어낸 얘기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적지 않게 벌어졌던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자동차가 없는 일상생활은 불가능하지만 누구나 사고를 일으키거나 피해를 입을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를 '허용된 위험'이라고 부른다. 조심운전에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위험에 대비하는 본격적인 제도는 역시 보험이다. 그 필요성이 높아 보험가입이 법적 의무가 됐고 우리나라도 2650만명이 가입했다. 이 공공의 위험분산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금도가 있다. 그러나 일부 피해자와 이해관계자의 악용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고 정책 당국의 책무다.

갈수록 심해지는 '경상환자의 장기 치료' 현상도 풀어야 할 문제다. 정부는 몰지각한 이해관계자에 의해 날로 심해지는 이 현상을 해소할 지혜를 널리 모아왔고 개선방안을 입법예고했다. 새로운 입법은 통상의 치료기간 내에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되, 일정 기간을 넘어서는 경우 계속 치료 여부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따라서 새 제도가 의사의 진료권이나 환자의 치료권을 제한할 것이라는 우려는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 못 한 기우에 불과하다. 엉터리 환자로 인해 이유없이 책임을 떠안은 수많은 운전자의 분노가 이어지고 일부 피해자의 과잉진료가 이미 범죄단계에 있는 상황을 잘 알면서 과잉치료를 권리라고 옹호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정부안은 무조건 치료를 막는 게 아니라 피해에 합당한 치료는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환자의 진술보다는 사고와 객관적 인과관계가 있는 부상을 제대로 치료할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는 게 핵심 목표다. 이 안은 상당 기간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의 지혜를 모아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다. 그 내용도 공공의 이익에 비춰 무리하지 않다. 다른 나라의 대응 추세와 비교해도 과도하지 않다. 독일은 시속 11km, 스페인은 시속 8km 미만의 경미한 사고에 대해서는 보험금 지급을 제한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경상환자의 치료 기간과 비용에 상한을 뒀다. 영국도 필요한 입법절차를 마쳤다.


우리도 객관적 기준 없이 이어지던 '과잉 진료' 관행에 합리적인 제동을 걸어야 한다. 환자의 주관적 호소에 주로 근거한 의료행위가 과학이라 보긴 어렵다. 이 부적절한 관행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선량한 보험계약자가 떠안을 이유는 없다. 동시에 새 제도는 분쟁 발생 시 구제 절차도 함께 마련하고 있는 만큼, 만의 일이라도 필요한 진료에서 배제되는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설계돼야 한다. 제도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실제로 장기치료가 더 필요한 환자가 서류 준비의 어려움이나 경직된 절차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당국과 관련 업계가 현장을 모니터링하고 이해관계자의 제안을 두루 경청하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김선정 동국대 법학과 특임교수(전 한국보험법학회장)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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