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 산업은 지난 몇 년간 전기차 캐즘(일시적 시장 정체), 미국 통상 리스크, 중국 저가 공세와 기술 추격이라는 복합 위기를 겪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점유율은 77.4%, 한국은 17.4%에 불과하다. 비중국 세계시장 점유율도 올해 상반기 중국(49.2%)이 한국(40.6%)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중국은 '제조 2025' 국가전략과 대규모 정부 보조금, 내수 시장 활용으로 경쟁력을 빠르게 강화했다. 특히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확산은 K배터리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다행히 최근 대내외 환경 변화는 재도약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BBBA)' 제정과 한미 상호관세 협상 타결로 통상 불확실성이 줄었고, K배터리는 전기차에 이어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서도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AI 경제, 에너지 고속도로, RE100 산업단지 등 새정부 국정과제도 K배터리 재도약에 힘을 더한다.
배터리 산업은 매년 20~30% 성장하는 신성장산업으로, K배터리는 반도체와 함께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략 산업이다. 중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넘사벽'이 되기 전에, 새 정부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획기적 정책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자원과 내수가 부족한 한국은 본원적 경쟁력에서 앞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새정부는 세 가지 정책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주었으면 한다.
첫째, 첨단전략산업 국내 생산 촉진 세액공제 도입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시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OBBBA 법률을 통해 미국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제도를 2032년까지 존속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AMPC 제도를 통해 작년 1조8000억원, 올해 상반기 1조5000억원을 미국 정부로부터 받았다.
국내 생산 세액공제는 전략산업 소재·부품·장비 기업부터 우선 시행하고, '국내 생산+해외판매'도 허용하면 실효성이 높아진다. 이를 통해 해외 의존 공급망 안정, 산업 공동화 방지, 지역 균형 및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둘째, 기술 초격차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강화이다. 국내 3사의 상반기 R&D 투자(1조4000억원)는 중국 CATL(2조700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정부 차세대 배터리 지원도 중국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차세대 배터리뿐 아니라 로봇, 도심항공교통(UAM), AI 데이터센터 등 신산업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R&D 예산 확대와 직접 환급형 R&D 투자세액공제 도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기업의 재정 부담을 줄이고, 민간 R&D 투자를 적극 유도할 수 있다.
셋째, 한미 투자 협력 강화다. 관세 협상 후속 조치로 현지 공장 건설 기자재와 생산 원재료에 대한 관세 면제·인하가 필요하다. 배터리 원가에서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등 4대 소재 비중이 높고 미국 내 조달이 어려워, 현지 투자기업 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이다.
배터리는 전기차, 에너지전환 및 미래 모빌리티에 필수적인 전략산업이며, 공급망 안보를 위한 전략 자산이다. 더 이상 글로벌 배터리 주도권 싸움에서 밀려서는 K배터리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책 과제의 시행에는 세수 부담과 글로벌 협력이라는 여러 변수가 존재하지만, K배터리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새정부의 의지와 속도 있는 실행이 K배터리 경쟁력 확보와 글로벌 공급망 전략적 지위 유지의 관건이 될 것이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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