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해 180여개국이 참여해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협약 마련을 논의했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15일 한국 정부와 외신에 따르면 이달 5일부터 열흘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 성안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추가 협상 회의(INC-5.2)가 이날 오전 9시 합의를 달성하지 못하고 끝났다. 180여개국 대표단은 협상 종료일을 하루 넘기면서까지 논의를 이어갔으나 끝나 합의를 이루지는 못했다.
앞서 유엔 회원국들은 2022년 3월 유엔환경총회(UNEA)에서 플라스틱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全) 주기 관리를 통해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는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2024년까지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5차례 협상위를 진행했으나 계획대로 협약을 성안하지 못했다.
기후환경단체 등에 따르면 이번 회의에서 논의의 기초가 된 '의장 제안문'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임을 나타내는 '괄호'(bracket)는 한때 약 1500개에 달했다. 이는 5차 협상위 때보다 5배 정도 늘어난 것이다. 의견 대립이 가장 첨예했던 '6조'는 조항 전체에 괄호가 씌워져 있었다. 6조는 플라스틱 생산과 관련된 조항이다.
실제 협상을 결렬시킨 쟁점은 '플라스틱 생산'과 '플라스틱 생산 시 우려 화학물질' 규제 여부였다. 협약 이행을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등도 쟁점이었다. 100여개국이 화석연료에서 추출한 플라스틱 원료인 '1차 플라스틱 폴리머'를 비롯한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지지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러시아·이란·말레이시아 등 산유국들이 이를 '레드라인'으로 설정하고 버텼다.
미국의 입장 변화도 합의 실패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행정부가 바뀐 미국이 플라스틱 생산 규제에 강하게 반대하는 쪽으로 입장을 변경했다. 앞서 주요 외신은 미국이 플라스틱 생산·공급 제한이나 첨가물 규제에 동의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메모를 수십개국에 보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세계 1위 플라스틱 수입국이자 중국에 이은 세계 2위 생산국이다.
중화학공업 강국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플라스틱 다(多)생산·다소비 국가인 한국도 이번 협상에서 걸맞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받는다. 녹색연합과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에 따르면 지난 12일까지 한국이 제출한 제안문은 유해 플라스틱 제품에 대해 각국이 상황과 역량에 맞춰 적절히 조치하도록 규정하자는 내용이어서 다른 국가의 제안보다 후퇴한 안으로 평가됐다. 환경단체들은 "회의에서 한국 정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우리 대표단은 이전 협상위 개최국으로서 당사국들의 각기 다른 입장을 좁히기 위해 절충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등 협정이 타결되도록 건설적인 역할을 지속해서 수행했다"고 밝혔다.
각국은 추가 협상 회의를 추후에 열어 협상을 지속하기로만 합의했다.
세계적으로 연간(2020년 기준) 4억3500만t의 플라스틱이 생산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플라스틱 생산을 규제하지 않으면 2040년엔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이 7억3600만t으로 지금보다 70%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플라스틱 폐기물 15%가 재활용을 위해 수거되지만,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은 9%에 불과하다. 거의 절반인 46%는 매립지에 버려지고 17%는 소각되며 나머지 22%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폐기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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