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심·공조했더니 피해자만 15명…솜방망이 처벌 막으려면[성착취, 아웃]

⑭협심·공조로 밝혀낸 진실들
피해자 2명→15명, 1만건 이상 삭제 지원
청소년 성착취물 범죄자 집행유예 비율 65%
"강력한 가해자 처벌 필요"

편집자주아동·청소년 성매매는 성착취로 규정한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미성숙한 아동·청소년을 성적 동의, 계약의 주체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 메신저, 익명 기반 플랫폼 등을 통해 온라인에서 친밀감을 빠르게 형성하는 아동·청소년은 예전보다 더 쉽게 성착취 범죄에 휘말린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로 지원받은 4명 중 1명은 10대(27.8%)였다. 2023년도 대비 센터의 지원을 받은 10대 피해자는 600명 이상(3.3%포인트) 늘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는 명백한 성학대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은 없는지 실제 피해 사례를 토대로 어떤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인천디지털성범죄예방대응센터(이하 인천디성센터) 상담실을 찾아온 이모(15)양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은 성착취 영상이 성인사이트에 번지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지인의 제보를 통해 영상의 실체를 알게 된 이양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영상 속엔 2년 전부터 센터가 쫓던 남성 김모(35)씨가 있었다. "피해자가 한, 두 명이 아닐 것 같은데…." 유호윤 피해지원관은 남성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차렸다. 센터에서 추적하고 있던 그 남성이었다.


피해자는 이양만이 아니었다. 남성은 수년 전부터 여러 성인사이트에 불법촬영물로 의심되는 영상을 올렸다. 센터가 지속해서 영상을 삭제해왔지만, 이양이 센터를 찾아오기 전 또 다른 성인 여성도 해당 남성으로부터 불법촬영 피해를 당했다며 피해를 호소했다.

유호윤 인천디지털성범죄예방대응센터 피해지원관이 지난 11일 센터 내 한 상담실에서 성착취물 제작·배포 및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위반한 피의자인 김모(35)씨의 판결문을 토대로 과거 범죄 사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천디지털성범죄예방대응센터 제공

유호윤 인천디지털성범죄예방대응센터 피해지원관이 지난 11일 센터 내 한 상담실에서 성착취물 제작·배포 및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위반한 피의자인 김모(35)씨의 판결문을 토대로 과거 범죄 사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천디지털성범죄예방대응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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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센터는 남성의 범죄 사실을 알았지만 그때는 잡지 못했어요. 1년 정도 수배도 했었는데, 잡히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마침내 잡힌 거죠."


인천에서만 피해자가 2명이었다.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란 유 지원관의 직감은 가해 남성의 결심 공판 당일, 현장에서 서울디지털성범죄안심지원센터 근무자를 만나면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다른 센터에서도 같은 남성이 찍은 불법 촬영물 수천건을 삭제해왔고, 피해자가 많아 사건을 주시하고 있었다.


가해 남성의 결심 공판 당일, 유 지원관은 동종 범죄 전력이 있는 가해 남성의 높은 형량을 예상했다. 그러나 구형 결과는 예상을 빗겨 나갔다. 수원지법 안양지원 제1형사부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동종전과가 있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미성년자의제강간, 성폭력 범죄 처벌 등 특례법을 위반한 가해 남성에게 최소 형량보다 1년 많은 6년을 구형했다. 국내법에서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하거나 수입·수출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

디지털 성범죄는 검찰 구형보다 더 낮은 형량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는 형량이 감형되는 사례가 많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집계한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기준 준수율은 78.4%로 평균보다 낮다. 양형기준은 권고의 성격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어도 대부분 판사들이 이를 따르기 때문에 평균 준수율이 90.4%에 달한다.


김수현 십대여성인권센터 상근 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이 적용된 전체 사건 2187건 중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에 대한 집행유예 비율은 65.2%로 성착취물을 제작한 경우라도 평균 형량이 양형기준에 현저히 못 미친다"면서 "양형기준이 있더라도 법원에서 정상 참작, 감경하는 비율이 높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해자가 20~30대로 사회초년생인 경우가 많다 보니, 기회를 부여하거나 피해자가 여럿임에도 초범으로 보는 등 감경 사유가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피의자 김모씨는 과거에도 불법촬영물 등 유사한 방법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재판을 받았다.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사건번호 등은 모두 모자이크 처리. 이현주 기자

피의자 김모씨는 과거에도 불법촬영물 등 유사한 방법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재판을 받았다.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사건번호 등은 모두 모자이크 처리.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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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을 지원해 온 기관 관계자들은 허탈했다. 가해 남성은 반복된 수법으로 청소년을 포함한 여성들을 유인해 불법촬영물을 만들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의도적으로 접근해 불법촬영물을 만들고 피해 여성을 위하는 척하는 이중적인 태도도 보였다. 촬영에 그치지 않고 이를 온라인에 유포했다. 촬영물은 센터의 지속적인 삭제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유포되고 검색되며 또다시 소비됐다.


센터 관계자들은 남성의 행위가 양형 가중 요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는 ▲범행 수법이 불량한 경우▲비난할 만한 범행 동기 ▲다수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상당한 기간에 걸친 반복적인 범행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일 경우를 특별 양형인자 가중요소로 규정하고 있다.


인천디성센터는 1심 재판 전까지 해당 사건의 피해 사례를 전부 모으기로 결정했다. 각 센터의 의견과 피해자 탄원서, 지원실적 보고서 등을 양형 가중 요소의 근거로 제출했다. 또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의 협업을 통해 피해자 수를 집계했고, 전국적으로 15명이 더 존재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삭제 지원 건수도 1283건에서 1만744건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부산에서도 피해자가 나왔다. 피해 여성이 제출한 탄원서에는 "다른 사람과 접촉이나 외출이 어려워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며 처절한 심경이 담겨 있다. 사건을 전담해온 부산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젠센터)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대중교통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사람을 보면 혹시 자기 영상을 보고, 나를 알아보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안고 있고, 갑자기 공황이 오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충무로역 안에 불법촬영 금지 관련 안내문이 게시 되어 있다. 이현주 기자

서울 지하철 충무로역 안에 불법촬영 금지 관련 안내문이 게시 되어 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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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센터가 함께 노력한 결과 1심 재판에서 가해 남성은 징역 7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7년 취업제한 등 당초 구형보다 높은 선고를 받을 수 있었다. 유 지원관은 "디지털 성범죄를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지 않고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선고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성범죄는 개인 간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악용한 범죄이며 취약한 아동과 여성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에 국가 차원의 개입이 그만큼 명확해졌다"고 덧붙였다.


현장 전문가들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근절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류혜진 인천디성센터 팀장은 "영상물이 영구 삭제되지 않는 한계점은 국가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면서 "일시적이거나 단발적 사업이 아닌 일관된 정책 기조로 끌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연희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삭제지원 팀장은 "피해의 저연령화 현상을 되짚어 보면 우리 사회에 지금보다 촘촘한 안전망 마련이 필요하다"며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의 항구적인 해결책은 강력한 가해자 처벌"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성범죄,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성착취, 교제폭력, 스토킹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여성긴급전화 1366(☎1366)에서 365일 24시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 관련 상담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청소년상담채널 디포유스(@d4youth)를 통해서도 1:1 익명 상담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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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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