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AI 정부, 판을 새로 짜라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부 명예교수

관료제 혁신·전문 인력 확보 통해
지속 발전 이끌 AI 정부 설계해야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부 명예교수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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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에 대해 정부는 두 가지 접근이 가능하다. 하나는 AI 인프라 구축,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지원 등 산업 생태계를 위한 정부의 정책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기능과 역할 수행에 AI를 적극 활용하는 것인데, 후자를 흔히 'AI 정부(AI 기반 정부)'라 부른다.


AI 정부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정책 설계와 집행, 행정서비스 제공을 지능화하는 능동형 정부다. 전자정부가 행정 효율성이나 통합성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AI 정부의 핵심 가치는 정밀성과 최적화이다. 기존의 획일적이며 보편적인 서비스가 아닌, 개별 시민의 상황에 따라 서비스를 차별화할 수 있는 개인별 맞춤 행정이 가능하다. 또한 AI를 통해 분산된 정부 자원을 실시간으로 분석·판단하고 필요한 곳에 신속히 투입하여 자원의 최적 활용을 도모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AI 정부 논의가 중요한 것은 기존 정부에 새로운 기술을 얹는 수준이 아니라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AI 정부는 진화된 디지털화가 아니라 국가 지속 발전을 위해 미래 한국 사회에 필요하고 적합한 정부 설계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레일이 언급한 특이점의 핵심은 사회의 질적 변환이다. AI 정부 역시 관료제 기반의 정부 구조와 작동 원리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혁이어야 지속할 수 있다.


사람을 기반으로 규칙, 절차와 폐쇄적인 칸막이식 관리가 촘촘하게 짜인 관료제는 AI와 사람이 이음새 없이 긴밀하게 연결된 열린 정부에는 맞지 않다. 새로운 정부 언어와 문법이 필요하며 지금이 미래 정부의 특이점을 준비할 적기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AI 환경에 부합하는 일하는 방식이다. 실제 행정서비스가 기획·집행·소통되는 업무 현장, 이른바 백오피스가 바뀌지 않으면 그 어떤 기술이 접목되어도 옷만 바꿔입은 꼴이 되기 쉽다. 정부 혁신은 한마디로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의미하며 분절된 부처별 사일로를 깨고 실시간 네트워킹을 통한 협업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경직된 관료제 문화 속에서 AI 정부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을까.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의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언급한 말을 곱씹어 보자. 지난 정부가 전자정부를 디지털정부로 이름을 바꿨지만, 여전히 관료제의 낡은 문화에 갇혀있는 현실을 떠올리면, AI 정부도 같은 길을 걸을 위험이 있다.


끝으로 이제는 범용형 행정직 양산을 멈춰야 한다. AI 정부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고도의 전문 역량을 갖춘 인재다.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 설계, AI 윤리 등 특정 분야의 깊은 전문성이 없는 인력은 AI 정부의 핵심 동력이 되기 어렵다.


기술에 현혹되어 자칫 말보다 마차를 앞세우는 우를 범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 혁신을 글로벌 표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잠재력은 이미 있다. 문제는 이를 실행할 의지와 창의성이다. 이번 기회에 사람과 인공지능이 함께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AI 정부를 설계하고 실현하는 새로운 판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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