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30년 전과 정반대의 출산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과거 '아들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던 시대에서 이제는 '딸이 더 좋다'는 응답이 전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11일 여론조사기관 갤럽 인터내셔널이 2024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44개국 성인 4만4783명을 대상으로 "아이를 한 명만 가질 수 있다면 어떤 성별을 원하느냐"고 물은 결과 한국 응답자의 28%가 '딸'을 꼽았다. 아들을 선호한다는 응답(15%)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이는 일본·스페인·필리핀(26%), 방글라데시(24%) 등을 제치고 딸 선호율 1위에 해당한다.
반면 1992년 같은 조사에서는 한국인의 58%가 아들을, 10%가 딸을 원한다고 각각 답했다. 약 30년 만에 선호 성별이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연령별로 보면 60대 이상만 아들 선호(23%)가 딸(20%)보다 높았고 특히 30·40대 여성의 절반 가까이가 '딸'을 선택하는 등 세대별 차이도 두드러졌다.
한국리서치가 2024년 6월 발표한 '2024 자녀·육아인식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자녀 성별 선호도에 대해 물은 결과 '딸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62%였고 '아들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36%였다.
출생성비 변화에서도 이 흐름은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 여아 100명당 남아 수는 116.5명이었으나 2023년에는 105.1명으로 자연 성비 범위(103~107명)에 진입했다. 2000년대 초까지 110명을 웃돌던 수치가 2008년 이후 안정화된 것이다.
지난 6월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여러 지역에서 딸 선호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보도했다. 남아 선호가 후퇴하고 딸 선호 현상이 나타난 이유에 대해서는 ▲성 역할 인식 변화 ▲미혼 남성 증가 ▲여성 혐오에 대한 사회적 반성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노후 부양과 돌봄 부담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양대 임상 간호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치매 노인을 주로 돌보는 가족의 82.4%가 여성이었고 이 중 '딸'의 비율이 42.4%로 가장 높았다. 아들은 15.2%에 그쳤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인식 전환을 넘어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가족 구조와 돌봄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과거 '아들을 낳아야 가문을 잇는다'는 사고가 사라지고 '딸이 부모의 노후를 더 잘 지켜준다'는 믿음이 대체하고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