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를 무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의 전횡으로 세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미국의 몰락, 특히 달러의 몰락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트럼프는 트로이 목마로 보인다. 달러 패권의 종말은 과연 현실화할까?
한쪽에서는 달러의 몰락은 필연이라고 주장하지만 달러의 지위를 강화하는 힘들이 작용한다. 우선 달러의 사용자 수가 늘어날수록 달러의 가치가 증가하는 네트워크 효과이다. 원유가 달러로 거래될 때마다, 달러로 신규대출이 이뤄질 때마다, 달러 파생상품이 거래될 때마다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힘은 강화된다. 유로나 런민비(위안화)는 달러와 비교해 널리 수용되지 않고, 유럽과 중국에는 미 금융 시장과 같은 크기, 개방성, 깊이, 그리고 정교함을 갖춘 시장이 없다.
달러 자산의 보유라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 상무부 산하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2025년 1분기에 미국의 순국제투자 포지션(대외자산 - 대외부채)은 마이너스 24조6100억달러이다. 이 포지션은 2010~2021년 사이에 약 40% 하락했다. 그 주된 이유는 이 기간 미국 주가의 두드러진 상승으로 인한 외국 투자의 유입이다. 외국 투자자들이 미국 기업 주식의 약 30%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 대외자산에서 얻은 이익에 비해 외국인들이 미국 주식 및 다른 금융자산에서 거둔 이익이 훨씬 더 컸다.
미국 주식이 상대적으로 지난 10년간 강세를 보인 이유는 미국 기업들의 시장 파워가 커져서 이익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국 투자자들이 미 증시에 몰려든 것은 미국의 군사력 때문도 아니고, 미국이 '안전자산'의 공급자이어서도 아니다. 미국에 대한 투자가 더 많은 수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중국의 부상으로 중국이 보유한 달러 자산이 증가하자 지정학적 이슈가 됐다. 하지만 2010년대에 미·중 간 경제 관계는 후퇴했다. 대신 미국에 우호적인 유럽과 아시아의 선진국, 그리고 중동 산유국들이 중심이 된 새로운 채권국들이 등장해 미국 자산을 대거 보유하게 됐다. 이익을 위한 자발적 선택이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미국 수출 경쟁력이 강해지고 미 자산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에 미국 자산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손해를 본다. 미국의 자산을 24조 6100억달러나 보유한 외국 투자자들은 달러 강세를 원하지 않을까?
한편 지난 6월 발행된 국제결제은행 (BIS) '2025 연례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후 헤지펀드, 투자펀드, 연금펀드, 자산운용사 등 비은행 금융기구들의 역할이 커졌다. 민간펀드가 운용하는 자산은 2000년대 초 약 2억달러에서 2024년 2조5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외국 민간투자자들은 지난 10년간 미 국채 보유를 크게 늘렸다. 이들의 매우 복잡한 거래로 2020년 3월 미 국채 시장의 패닉과 같은 시장의 불안정이 초래될 수 있다.
미 국채 시장의 유동성은 글로벌 금융 시장의 근간이다. 이 시장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안정을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연방준비제도(Fed)가 국채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Fed의 활동에 개입하면 할수록 Fed가 적시에 제 역할을 못 할 수도 있다. Fed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면 국채 시장의 불안감은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래서 미 대통령보다 Fed의 독립성이 달러의 지위 유지에 더 중요하다. 트럼프의 거친 행보가 미 금융 시장의 안정성을 해치고, 기업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며, Fed의 자율성을 약화할수록 트럼프는 트로이 목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동기 '달러의 힘' 저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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