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실용주의에도 원칙은 필요하다

세수 확보 vs 주식시장 활성화 딜레마
입법예고 기간까지 재검토 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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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양도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대상을 '1종목당 50억원 이상 보유'에서 '1종목당 10억원 이상 보유'로 확대하는 문제를 두고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벌집을 쑤신 것처럼 난리가 났다. 세수 확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자본시장 활성화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문제의 발단은 2023년 연말로 거슬러 간다. 당시 윤석열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주식 양도세 대주주 부과 대상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단일종목 50억원 이하 10억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를 양도세 부과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민주당은 당시 정부 결정을 두고 "결국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세제개편안은 2년 전 세제를 되돌리는 것이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과거와 달리 찬반으로 의견이 갈렸다.

양도세 부과 기준 강화 반대 주장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정부는 부동산에 몰려 있는 자금을 보다 생산적인 주식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이른바 '머니무브'를 적극 유도했는데, 세제개편안이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을 활성화해 집값을 안정시키고 기업 자금 조달에도 숨통을 트이게 하려 했는데 세제개편안이 시장의 신뢰를 깨뜨렸다는 시각이다. 대주주 요건 등이 강화될 경우 양도세 부과기준 적용을 피하기 위해 연말마다 투매가 이어져 주식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세제개편안 발표 다음날인 이달 1일 주식시장이 폭락하자 투자자들은 정책을 추진한 정치인을 성토했다.


찬성 주장도 근거가 있다. 악화한 재정을 물려받은 이재명 정부로서는 이런저런 형편을 따질 처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재정 여건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세입 여건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정부는 '세제 정상화'라는 명목으로 정치권이 부담스러워할 키워드인 증세를 꺼내 들었다.


법인세와 증권거래세 등의 세율 인상을 통해 향후 5년간 35조원 내외의 추가 세수 확보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세수 부족이 해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재명 정부의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해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돈 나갈 곳은 천지인데, 돈 들어올 곳은 뻔한 게 현실이다.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 강화 방안은 '세입기반 확충 및 조세제도 합리화' 수단으로 제시됐지만 제대로 시행하기도 전에 암초를 만났다. 민주당은 공개적 논쟁은 자제한 채 의견 수렴 절차 등을 거치고 있다.

조세 관련 전문가들은 자산 관련 세금 논의가 벌어질 때마다 여론 반발에 떠밀려 세제개혁이 흔들리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산 관련 과세는 취약한 데 반해 소득이나 소비 관련 과세에 세수가 집중된 상황이다. 부동산이나 주식 관련해 세금 논의가 나올 때마다 정치권은 사달이 난다." 조세 전문가의 쓴소리는 곱씹어 볼 내용이다.


무엇보다 원칙이 바로 서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이 갖가지 이유로 지켜지지 않다 보니 모든 사안이 정치적 투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용은 좋은 말이다. 다만 "원칙 없는 실용"이라는 비판을 받는다면 속 빈 강정과 다를 게 없다.





나주석 정치부 차장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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