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는 일반인이 상상도 못 할 부를 거머쥔 테크 부자들의 고향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아직 성취하지 못한 영역이 있으니, 바로 불로불사입니다. 노화를 역전하려는 실리콘 밸리 부자들의 집착은 상상 이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유명 억만장자는 아들의 피를 수혈받는 실험을 단행하면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일명 '병체결합(Parabiosis·패러바이오시스)'이라 불리는 시술로, 한때 실리콘 밸리에서 높은 관심을 받았지요.
전자 결제업체 '브레인트리' 설립자이자 실리콘 밸리 억만장자인 브라이언 존슨은 2023년 '노화 역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7세 아들의 피를 수혈받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47세인 그는 자기 몸의 노화를 역전하기 위해 온갖 요법을 동원하고 있는데, 해당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노하우를 전수하는 스타트업인 '블루프린트'를 설립해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의 피를 수혈받아 노화를 역행하는 요법은 병체결합이라 불립니다. 연구 자체는 오래 전부터 시도됐지만, 실제로 사람의 몸을 젊게 만들 수 있다는 임상적 근거는 희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리콘 밸리에서 병체결합을 향한 관심은 항상 뜨거웠습니다.
병체결합은 젊은 생물의 혈액을 늙은 생물의 혈관에 순환시키는 시술입니다. 이로써 늙은 생물의 장기, 특히 두뇌의 노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병체결합 자체는 오랜 역사를 자랑합니다. 17세기 독일 화학자 겸 의학자였던 안드레아스 리바비우스는 젊은이의 동맥과 늙은이의 동맥을 직접 연결하면 회춘이 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관련 연구도 이따금 주요 학술지에 등재되곤 합니다. 일례로 2023년에는 미국 듀크대 연구팀이 '네이처 노화'에 젊은 쥐와 늙은 쥐의 순환계를 외과 수술적으로 병합, 늙은 쥐 수명이 10% 증가하는 결과를 확인했다며 주장했습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취지의 쥐 실험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병체결합은 믿을만한 시술일까요. 아직 명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병체결합 실험은 실험 쥐를 사용했으며, 그마저도 대규모 실험이 아니기 때문에 신뢰성 있는 데이터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실험 쥐는 실험 표본용으로 교배된 생물이기에 인간과 전혀 다릅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무턱대고 수혈받다가는 면역 거부 반응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앓게 될 위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 일부 부자들은 병체결합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들의 피를 직접 수혈받는 실험을 단행한 존슨은 물론이고, 팔란티어 창업자인 피터 틸도 병체결합과 관련해 긍정적인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그는 2016년 미국 기업 전문 잡지 'Inc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병체결합에 대해 연구 중인데 매우 흥미롭다"며 "젊은 쥐의 피를 늙은 쥐에게 주입했더니 엄청난 회춘 결과가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병체결합 연구는 사실 1950년대에 이미 진행됐다가 완전히 중단됐다"며 "매우 이상한 사례 아닌가. 이런 연구들이 많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요.
실제 이런 관심을 수익화하려는 시도도 이뤄졌습니다. 2016년 창립한 '앰브로시아'라는 스타트업이 대표적으로, 1회당 8000달러(약 1105만원)를 대가로 '병체결합 임상 실험'에 참가할 자격을 준다며 홍보했지요. 단 1년 만에 600명의 부자가 실험에 참여했습니다. 다만 앰브로시아는 2019년 미 식품의약국(FDA)의 안전 경고를 받은 뒤 모든 실험을 중단했습니다.
실리콘 밸리의 '노화 역전' 열풍을 풍자한 HBO 인기 드라마 '실리콘 밸리'의 한 장면. '수혈 소년'이라 불리는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사업가에게 자기 피를 수혈 중인 모습. 유튜브 캡처
원본보기 아이콘병체결합에 대한 실리콘 밸리의 집착을 풍자한 드라마도 나왔습니다. 미국 방송사 'HBO'의 인기 코미디 드라마 '실리콘 밸리'의 '수혈 소년'이라는 에피소드로, 한 부자 경영인의 '살아있는 수혈 팩'으로 사는 젊은 남성의 이야기를 다뤄 화제가 됐습니다.
현재까진 노화 역행의 가능성은 매우 낮은 듯하지만, 실리콘 밸리 부자들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실리콘 밸리는 노화 역전의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쥐고 있는 기술이라면 곧장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만능 줄기세포를 이용해 노화를 역전한다는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알토스 랩'이 대표적입니다.
알토스 랩은 미국, 영국에 연구소를 둔 생명공학 기업으로, 벤처 투자자 유리 밀너,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등으로부터 무려 30억달러(약 4조원)의 투자금을 유치한 기업입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유명한 생명공학자는 모조리 끌어모아 노화 역행 기술만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유도 만능 줄기세포 연구로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야마나카 신야 교수도 기업 과학 고문으로 합류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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