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폰 받아서 샤워도 하고 견딘다"…사람을 살리는 '특별한 대피소'

밤더위대피소 동남사우나 가보니
쪽방 주민들 더위 피해 삼삼오오
사우나도 고객 늘어 '두마리 토끼'
서울시, 무더위쉼터 3770여곳 운영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른 지난달 29일 오후. 바깥으로 나온 지 5분 만에 구슬땀이 맺히는 더위였지만 영등포시장 안 작은 상가에 자리 잡은 '동남사우나'에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냉감이 느껴지는 바닥재에 발을 딛고 에어컨 바람을 쐬자 더위는 금세 가셨다. 인근 20분 거리에 있는 쪽방촌 주민들 10명도 이날 사우나 안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여름에는 매일같이 이곳에 온다"고 말했다.


동남사우나는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쪽방촌 주민을 지원하는 '동행목욕탕'이자 '밤더위대피소'다. 샤워 및 냉방 시설이 열악한 쪽방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7~8월 매일 1장씩 제공되는 쿠폰을 지급하면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잠도 잘 수 있다. 평범한 찜질방 같은 외관이지만 쪽방촌 주민들에게는 숙박의 용도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사우나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이부자리까지 마련했다. 쪽방촌에 10년간 거주했다는 박모씨(77)는 "여기에 오면 시원하고, 씻을 수 있고, 말동무까지 생긴다"며 "그나마 여기(밤더위대피소) 덕분에 여름을 견디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 동남사우나에서 쪽방 주민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서울 영등포구 동남사우나에서 쪽방 주민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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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밤더위대피소 운영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동남사우나를 운영하는 서현정씨(65)는 "처음에는 일반 사우나랑 다르다는 점 때문에 선입견이 생길까 봐 (사업에) 지원할까 고민이 됐지만, 이제는 사우나 입장에서도 좋다"며 "어차피 한 명이 쓰든, 여러 명이 쓰든 에어컨을 켜야 하는데 쪽방 손님들이 오게 되면서 그 값을 절약하게 돼 감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밤더위대피소 이용 주민들은 만족스럽다는 평을 하면서도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지원을 제안했다. 쪽방촌 주민 김모씨(53)는 "우리 쪽방에는 나이 든 사람이 많은데,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여기까지 오기가 힘들어서 못 온다"며 "그런 분들이 여기 와서 쉴 수 있게 가사도우미나 사람을 붙여서 도와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밤더위대피소(동행목욕탕) 외에도 서울시는 역대급 폭염 속 무더위 쉼터 3770여곳을 운영 중이다. 구청·도서관·종합복지관 등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과 마트·편의점·쇼핑몰 등 생활밀착시설도 무더위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1일부터 25개 자치구 구청사는 모두 무더위 쉼터를 개방한다. 공무원이 상주해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구청 무더위 쉼터는 보통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하고, 폭염특보 발효 시에는 운영 시간을 늘리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쪽방촌을 위한 밤더위대피소처럼 '맞춤형 쉼터'도 있다. 주로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휴식 시간에 짧게라도 무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마련된 이동노동자 쉼터다. 이동노동자 쉼터는 서울 시내 21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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