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 막바지에 참모에게 "역사에 죄짓지 말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3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아무렇지 않은 얼굴 밑으로 피 말리는 심정을 숨겼던 지난 며칠이었다"며 관세 협상에 대한 짧은 소회를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식당에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황인권 경호처장, 권혁기 의전비서관 등 참모진과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강 실장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협상 말미에 3실(비서실·정책실·국가안보실) 회의에 이어 장관들과 화상 통화까지 마친 뒤 강 실장에게 "제 방에 갑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이 대통령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강 실장님, 우리 역사에 죄는 짓지 말아야죠"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실장은 "대통령은 (협상 중) 자주 답답해했다"며 "평소에 막힘 없던 그가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고,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리고 오늘, 대통령님에게서 '점심 먹으러 가시죠'라던 말씀을 들었을 때, 비로소 뭔가 한 단락이 지어졌다는 게 실감 났다"며 사진 몇 장을 공개했다.
사진 속 대통령실 일행은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 대통령은 하늘색 와이셔츠 차림으로 소매를 걷었고, 환한 표정으로 웃으며 참모들과 대화하는 모습이었다. 식당에서 마주친 시민들과 사진을 찍기도 했다. 강 실장은 "내장국 한 그릇으로 회포를 풀고, 시민들을 만나 웃음을 나눴다"며 "대통령의 고심과 결단, 한마음으로 매달렸던 전 부처와 대통령실 실무자들의 노력과 팀워크. 모든 것들에 감사한 날"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 특강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 대강당에서 열린 이재명 정부 '장·차관 워크숍'에서 관세 협상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가만히 있으니 진짜 가만히 있었던 줄 안다"며 "치아까지 흔들렸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말을 하면 (관세 협상에) 악영향을 주니까 말을 안 한 것"이라며 "오리가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우아한 자태로 있지만, 물밑에서는 얼마나 난리냐. 참모들은 안다. 우리가 얼마나 노심초사하면서 정말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라고 말했다.
또 "좁게 보면 기업들의 해외 시장에 관한 얘기기도 하지만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들 부담일 수도 있고 그 결정 하나하나가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며 "지금 대한민국이 흥망의 갈림길에 서 있지 않나 생각할 때가 있다. 계속 플러스 성장 발전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아예 퇴행의 길을 갈 것인지 분기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어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한미 무역 협정 타결을 위해 애쓴 우리 장관님들, 총리님, 일선 부서 여러분 고생 많이 했다. 노심초사하고 정말 어려운 환경이다. 저도 이 나라의 국력을 키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려움 속에서도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성과를 이뤄낸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