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 구축'에 착수한다.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시장이 커지고 전력망 투자 '슈퍼사이클'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지역 단위의 지능형 전력망(마이크로그리드)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전력 시스템 전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3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차세대 전력망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을 배전망 중심으로 운영하고 남는 전력을 다시 송전망으로 보내는 '양방향' 계통이 특징이다. 기존 대형 발전소 중심의 '발전-송전-배전' 구조에서 벗어나, 마이크로그리드를 통해 분산된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인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 흐름에 발맞추기 위함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재생에너지 투자액은 7600억달러, 전력망 투자는 3880억달러, 전력저장 설비 투자는 570억달러에 달했다. 정부는 이 같은 글로벌 추세를 기회로 삼아 분산형 전원과 에너지저장장치(ESS), AI 기술을 결합한 지능형 전력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전력 생산·저장·소비의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차세대 전력망은 AI 기술을 활용해 발전량과 수요를 예측하고 전력망의 여유 용량을 고려해 재생에너지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점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출력제어를 줄이고, 전력시장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우선 전남 지역에서 차세대 전력망 실증사업을 시작한다. 전남은 국내 최대 재생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계통 한계로 출력제어가 빈번한 지역이다. 또한 한국에너지공대와 광주과학기술원(GIST), 한전, 전력거래소 등 관련 연구기관과 공기업이 집적돼 있어 대규모 실증에 유리하다는 평가다.
전남을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해 전기사업법과 전력시장 규제특례를 적용하고, 지역 발전사와 수요기업 간 전력 직접거래를 허용할 방침이다. 맞춤형 전기요금제 도입을 유도해 전력 신산업 비즈니스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또 장주기 ESS와 마이크로그리드 기술 개발 등 핵심 기술 개발 사업을 신설해 국가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한다.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을 개설해 가상발전소(VPP) 사업을 활성화하고, 배전망에 대규모 ESS를 구축해 재생에너지 접속 대기 물량을 해소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산단, 대학 캠퍼스, 공항, 군부대 등에도 맞춤형 마이크로그리드를 구축한다. 철강산단에서는 재생에너지 단지를 조성해 잉여 전력으로 그린수소를 생산, 수소환원제철 공정에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석유화학산단에서는 공장 유휴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잉여 전력을 열이나 전력으로 전환하는 실증을 추진한다.
차세대 전력망 산업은 설비(태양광·풍력·ESS·인버터)뿐 아니라 광통신망, 전력선 통신 등 네트워크, 운영 시스템과 가상발전소(VPP) 플랫폼, 수요반응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로 구성된다. 정부는 국내 실증으로 트랙 레코드를 확보한 뒤 이를 기반으로 수출산업으로 발전시킨다는 목표다.
한국에너지공대는 기업·연구기관·스타트업이 협업하는 '오픈 캠퍼스'로 운영되며, 광주과기원·전남대와 함께 공동연구, 장비 공동 활용, 기술 창업 협력 등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청년 창업을 지원하고 에너지 스타트업이 기업·대학과 협업하는 'K-GRID 인재·창업 밸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전력시장 제도 개편과 다양한 산업·기관의 협력이 필요한 만큼 정부와 민간이 참여하는 '차세대 전력망 추진단'도 구성한다. 추진단은 이호현 산업부 2차관을 단장으로 관계부처, 지자체, 유관기관, 업계, 외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로드맵과 세부 실행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분산형 전원과 AI 기반 전력망 기술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전환의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며 "국내 실증을 토대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전력망 산업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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