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법인세제를 3년 전 수준으로 되돌린다. 법인세 과세표준 전 구간의 세율을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해 내년부터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의 세 부담도 늘어나게 됐다.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강화하고,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전제로 추진했던 증권거래세 인하도 원상회복한다.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며 세수 확보가 점점 더 어려워지자 상대적으로 조세 부담 여력이 있는 대기업·고소득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겠다는 취지다. 세금 깎아 경제 성장을 이룬다는 윤석열 정부의 '낙수효과 신화'를 정면 비판하며, 대기업·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로 마련한 돈을 분배 개선에 쓰는 증세 기조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관세정책으로 한국 제조업 기업들의 투자금을 빨아들이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반기업 정책으로 거꾸로 이들을 밀어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31일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2025년 세제개편안'을 확정했다. 이형일 기재부 1차관은 "지난 3년간 세입 기반이 급속히 약화됐고, 이에 따라 조세 부담률은 크게 낮아졌다"며 "이번 세제개편은 경제 강국 도약과 민생 안정을 지원하는 한편,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약화한 세입 기반을 다지는 데 역점을 뒀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 첫 세제개편안의 핵심은 세수 확충이다. 윤 정부에서 쏟아낸 감세안을 원래대로 되돌려 세입 기반 확충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법인세 인상이다. 법인세 4개 과표 전 구간에서 세율을 각각 1%포인트씩 올린다. 현재 법인세율은 과세표준 2억원 이하(9%), 2억~200억원(19%), 200억~3000억원(21%), 3000억원 초과(24%)로 나뉘어 있다. 세율이 1%포인트씩 높아지게 되면 앞으로는 과세표준별로 2억원 이하(10%), 2억~200억원(20%), 200억~3000억원(22%), 3000억원 초과(25%)의 세율이 각각 적용된다.
정부는 인상폭이 1%포인트로 낮아도 과세표준 전 구간에서 모두 세율을 인상하면 정부가 의도한 증세 효과가 어느 정도 나타날 것으로 판단했다. 정부 계획대로 개편안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하면 내년 사업소득부터 적용된다.
이로써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도 세 부담이 높아지게 된다. 정부는 이번 세제 개편으로 법인세 부담이 총 4조5815억원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세제 개편에 따른 전체 세수 증대 효과(8조1672억원)의 상당 부분을 기업들이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대기업 부담(4조1676억원)은 절반이 넘는다.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도 확대된다.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현재 50억원 이상에서 10억원 이상으로 강화해 윤 정부 때 인하분을 되돌린다. 현행 0.15%인 증권거래세율도 0.20%로 올린다. 증권거래세는 수익 여부와 관계없이 주식을 팔면 물리는 세금이다. 증권거래세의 상당 부분이 개인투자자들에게서 나오는 만큼 세율을 올리더라도 세수 확대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박금철 기재부 세제실장은 "증권거래세 인하는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전제로 추진해왔다"며 "금투세가 폐지된 상황에서 증권거래세만 인하된 상태로 유지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대형 금융·보험사의 수익 1조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교육세 세율을 0.5%에서 1.0%로 0.5포인트 인상한다. 기재부는 "현재 일괄적으로 0.5%의 세율을 부과하고 있는데, 앞으로 1조원 이상 구간을 신설해 기존(0.5%)보다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보험업 교육세 과표 구간 신설은 1981년 제도 도입 이후 45년 만에 처음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대형 금융보험사들을 향해 주택담보대출 등과 같은 손쉬운 이자장사에만 매달리지 말고 투자 확대에 나서달라고 비판한 것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정부 내내 유지돼 온 감세 흐름을 끊고 전면적인 증세 기조로 돌아서면서 고착화한 저성장 기조를 극복하는 데 감세 카드가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윤 정부 3년간 97조5000억원가량의 세수 결손이 발생한 데다 저출생·초고령화 등 사회구조적 변화에 따른 복지지출 증가 등으로 재정 확대의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특히 법인세수 등의 감소로 인해 조세부담률이 2022년 22.1%에서 2024년 17.6%까지 낮아지는 등 세입 기반이 크게 약화했다고 보고 있다. 이 차관은 "최근의 경제 상황과 세수 감소를 고려해 보면 감세가 경제 활력을 제고하고 결과적으로 세수도 증가하는 선순환이라는 정책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법인세 인상은) 응능부담 원칙에 따른 세 부담 정상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최고세율 28%이던 법인세율을 이명박 정부 때 22%로 낮췄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대기업 증세 방침에 따라 다시 25%로 올렸다. 부자 감세를 내건 윤 정부는 2022년 세제개편을 통해 최고세율을 비롯해 과세표준 전 구간에서 세율을 1%포인트씩 내렸다. 이로써 현재 지방세를 포함한 법인세율은 26.4%로, 우리의 주요 수출 경쟁국인 주요 7개국(G7) 평균(27.14%)보다는 낮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3.9%)보다는 높은 수준이 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법인세율 인상에 따른 세수 증대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년간의 법인세수 감소는 세율 인하보다는 경기 악화에 따른 기업의 실적이 급감한 영향이 큰 데다, 기업의 조세 부담 증가가 경영 환경 악화로 이어져 오히려 세수가 추가 감소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이 좋으나 싫으나 대미 투자를 크게 늘려야 하는 상황이 됐고, 삼성전자·현대차 등 주요 기업들의 2분기 영업이익도 급감했다. 이번 법인세 인상으로 반기업적 정부라는 부정적 시그널마저 강하게 주면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내 투자가 더 힘들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관세 협상으로 주요 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짓고 투자를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법인세율을 올려도 세원이 커지기는 쉽지 않다"면서 "미국이 자국 내 제조업 유치에 열을 올리며 우리 기업들을 끌어당기는데 우리는 반기업적 정책으로 기업들을 밀어내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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