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만 해도 제지업체, 식품공장, 건설 현장 등에서 끼임·추락·질식 사고로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일이 연달아 발생했다.
대부분 기본적인 안전 조치만 취했어도 막을 수 있었던 사고들이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관련 법과 제도는 마련돼 있고 정부가 단속에도 나섰다. 그런데 기업이 바뀌지 않았다. 사고를 막는 데 드는 비용보다 사고 뒤에 치르는 대가가 더 작아서다. 중대재해가 일어나도 경영진이 실형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대형 로펌을 선임해 갖은 수를 다해 법망을 피한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여론도 잠잠해진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9일 국무회의에서 이 현실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원인으로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건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라며 "법률적으로 보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중대재해 발생 시) 형사처벌은 결정적 수단은 못 되는 것 같다. 경제적 제재를 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징벌적 배상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재해 예방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즉각 경제적 수단을 중심으로 한 제도 개선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31일 "과징금 등 경제적 제재 방식이 더 실효적일 수 있다는 제안이 나와 내부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수사와 입증 절차가 길고 복잡해 사고 직후 기업 경각심을 끌어내기에 한계가 있다"며 "경제적 제재는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꺼내든 해법은 경제적 손실을 통해 기업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사망사고가 잦은 건설 현장에 입찰·수주 제도 전반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기업 책임을 유도하겠다는 게 국토교통부의 방침이다. 이는 기업을 바꾸는 실질적 동기가 될 수 있다.
국토부는 지난 2월 최고경영자(CEO)가 건설 현장을 직접 점검하면 공공사업 입찰 평가에서 가점을 부여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CEO가 다녀갔다'는 사실만으로도 현장에선 긴장감이 생기고, 작업자와 협력업체 모두 안전에 민감해진다는 현장의 반응을 반영한 조치다.
실제로 GS건설은 본사 임원들이 현장에 상주한 2주간 사망·부상 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허윤홍 GS건설 대표까지 주요 현장을 직접 찾아 안전점검을 이어간 결과다. 결국 기업의 행동을 바꾸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은 '사후 제재'가 아니라 '실질적인 동기'라 할 수 있다. CEO가 움직이는 이유는 캠페인이 아니라 수주 경쟁이고, 기업을 바꾸는 건 벌이 아니라 손익인 것이다.
제도 설계와 이행 주체의 일관된 의지도 필요하다.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본부는 2017년 중대재해 예방 컨트롤타워로 확대 개편됐지만, 그 존재감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현장을 감독하고 기업을 설득하며, 반복사고를 제도적으로 관리할 주체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기업의 자율에만 맡겨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책임이다. 그 책임을 외면하면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수치와 제도로 보여줄 때 산업재해는 비로소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기업에는 직접적인 손실이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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