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원청 승인 안 하면 임금 못 받자 '하도급지킴이'에 '상생결제' 연계 추진

[건설위기 보고서] 임금체불 근절 대책
상생결제, 하도급사·근로자 직접 수령
민간 전자대금지급 확산 속 공공성 논란도
"공사비 운용금지 등 기준 먼저 마련해야"

정부가 공공 건설 현장에 의무 적용 중인 전자대금지급시스템 '하도급지킴이'에 '상생결제' 방식을 일부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두 시스템을 연계하면 원청 승인 없이 하도급 대금을 자동 지급할 수 있게 된다. 기획재정부 산하 조달청과 중소벤처기업부가 실무 협의에 착수했으며, 건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참고 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5일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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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건설업계에 만연한 불법 하도급과 임금 체불 문제 해소를 위해 제도 개편에 나섰다. 두 시스템을 연계하면 하청이 회생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압류 없이 노무비가 지급되고, 원청이 임의로 지급을 지연하는 일도 막을 수 있어 불공정 거래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국무회의에서 연이어 건설업 불공정 관행을 지적하며 "건설업 하도급 관련 불법을 강력히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취임 직후부터 같은 사안을 반복 언급한 것은 업계 자정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체불임금은 1조1005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고용부는 "건설업 불법 하도급과 불공정 거래가 구조적인 임금 체불의 주요 요인"이라며 근로감독과 사업주 제재 강화 방침을 밝혔다.


기획재정부 산하 조달청이 운영하는 전자대금지급시스템 '하도급지킴이' 개요. 나라장터를 이용하는 모든 공공기관과 3000만원 이상 공공 발주 건설 현장에 의무 적용된다. 하도급 대금을 받으려면 먼저 하도급사가 원청에 청구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요청해야 한다. 원청은 이를 확인한 뒤 발주처에 최종 승인을 요청한다. 발주처는 이상이 없다고 판단하면 원청 계좌로 공사비를 입금하고, 원청은 하도급사에 대금을 지급한다. 하도급사 계좌로 지급된 노무비는 하도급사가 근로자에게 따로 전달한다. 하도급지킴이는 근로자 임금 지급 사실 자체를 시스템 차원에서 직접 검증하는 기능이 없다.

기획재정부 산하 조달청이 운영하는 전자대금지급시스템 '하도급지킴이' 개요. 나라장터를 이용하는 모든 공공기관과 3000만원 이상 공공 발주 건설 현장에 의무 적용된다. 하도급 대금을 받으려면 먼저 하도급사가 원청에 청구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요청해야 한다. 원청은 이를 확인한 뒤 발주처에 최종 승인을 요청한다. 발주처는 이상이 없다고 판단하면 원청 계좌로 공사비를 입금하고, 원청은 하도급사에 대금을 지급한다. 하도급사 계좌로 지급된 노무비는 하도급사가 근로자에게 따로 전달한다. 하도급지킴이는 근로자 임금 지급 사실 자체를 시스템 차원에서 직접 검증하는 기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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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결제, '원청 승인' 필요 없고 공공기관 계좌에 예치
중소기업벤처부 산하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운영하는 전자대금지급시스템 '하도급상생결제' 개요. 상생결제는 공공기관 발주 공사나 대기업-중소기업 간 납품·용역 계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공사대금은 공공기관 명의 예치계좌에 보관되며 결제일에 바로 각 수령자에게 자동 이체되는 방식이다.

중소기업벤처부 산하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운영하는 전자대금지급시스템 '하도급상생결제' 개요. 상생결제는 공공기관 발주 공사나 대기업-중소기업 간 납품·용역 계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공사대금은 공공기관 명의 예치계좌에 보관되며 결제일에 바로 각 수령자에게 자동 이체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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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지킴이와 상생결제는 하도급 임금체불 방지를 위해 도입된 공공 전자대금지급시스템이다. 각각 조달청과 중기부 산하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운영한다. 두 제도 모두 공사대금을 별도 계좌에 보관한 뒤 하청업체나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에스크로(결제대금 제3자 예치) 방식이다. 하도급지킴이는 업체 명의 계좌에 대금을 예치하고 원청 승인을 거쳐야 인출이 가능하지만, 상생결제는 공공기관 명의 계좌에 예치된 대금이 자동 지급되는 방식이다.


지급 방식에서는 차이가 크다. 공공 물품계약과 민간 제조업 분야에 쓰이는 상생결제는 대금을 공공기관인 재단 명의 전용 계좌에 예치하고 정해진 날짜에 자동 송금한다. 반면 하도급지킴이는 원청 승인을 거쳐야 하청이 대금을 받을 수 있고, 승인 지연이나 회생 절차 중에 압류되는 문제가 있었다.

계좌 역시 공공기관이 아닌 업체 명의다. 노무비는 하청업체 계좌로 입금된 뒤 업체가 별도로 근로자에게 지급한다. 하도급지킴이는 하도급사 노무비 지급 내역은 관리하지만, 근로자에게 실제로 지급됐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않으며 별도의 행정 감독이 필요하다.


이에 정부는 상생결제 방식을 일부 반영하는 개편안을 검토해왔다. 대한건설협회와 전문건설협회 요청에 따라 2019년부터 하도급지킴이만 적용돼 왔지만, 운영 부담과 현장 혼선이 지속돼 제도 개선 필요성이 커졌다는 판단이다.


민간 건설공사도 전자대금지급 의무화 추진

정부는 나아가 민간 건설공사에도 전자대금지급시스템 도입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관련 내용을 담은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국토부는 지난 6월부터 한국조달연구원을 통해 관련 시행령 개정을 위한 사전 연구를 진행 중이며, 전자카드 연계와 민간 확대 방안 등을 포함한 실무 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 3월 하도급법상 전자대금지급시스템 의무화 관련 연구용역을 전북대 산학협력단에 발주했다.


정부는 민간공사의 전자대금지급시스템 의무화 시 운영 주체를 공공기관 중심으로 유지할지, 민간 플랫폼과 병행할지 여부를 두고 내부 검토 중이다.


하청 돈으로 금융상품 투자…공공성 없는 민간 시스템

최근 건설 현장에서는 나이스디앤알의 '노무비닷컴'과 클린페이의 '클린페이' 등 민간 전자대금지급시스템이 빠르게 확산 중이다. 이들 시스템은 원청의 인출 승인이 있어야 하청이 대금을 출금할 수 있는 '인출 제한 방식'이다. 일부는 노무비·자재비·장비비 등 세부 원가정보 입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민간 시스템 운영사들의 자금 운용 방식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민간 운영사는 발주처가 시스템에 예치해둔 공사대금을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낸다. 하청과 근로자에게 지급돼야 할 대금을 운용 수단으로 삼는 것은 공공성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천만원이 넘는 공사 대금을 관리하는 시스템 운영사가 모두 중소·중견기업이라는 점도 부도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전자대금지급 의무화에 앞서 민간에도 공공 수준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공공과 민간 시스템 차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건설사가 민간 운영사 권유로 해당 시스템을 채택할 경우 그 불이익은 하청과 근로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며 "한 번 시스템을 도입하면 바꾸기 어렵고 대부분 민간 시스템은 원청이 '고객'으로 설계돼 있어 하청은 항상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운영사가 대금을 운용해 수익을 내는 구조를 금지하거나 인출 지연이 발생할 경우 영업정지 등 제재를 가하는 공공 수준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전자대금지급 확산에만 속도를 낼 경우 체불 방지는커녕 새로운 형태의 갑질만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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