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과 캄보디아가 교전 나흘 만에 휴전에 합의했다. 양국의 무력 충돌이 장기화하지 않은 점은 다행이지만, 이번 교전의 속내를 살펴보면 씁쓸한 뒷맛은 지울 수 없다. 지도자들의 욕심 때문에 애꿎은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서로 이웃한 양국은 그간 잦은 분쟁과 전쟁을 통해 앙숙을 넘어 오랫동안 피의 역사를 써왔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태국의 정치 가문인 친나왓 일가와 캄보디아의 독재자 훈 센 상원의장은 친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통신 재벌 출신인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는 1994년 외무장관직에 발탁되기 전인 1992년부터 훈 센과 관계를 맺어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형제로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캄보디아의 독재자인 훈 센의 입장에서는 본인에게 가장 위협적인 태국 군부와 경쟁을 하는 탁신이 필요했을 것이다. 반대로 탁신은 군부를 견제하기 위해 훈 센이 필요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두 사람은 중국 광동성 출신의 화교라는 공통점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30년 넘는 우정은 올해 5월부터 삐걱댔다. 국경지대서 소규모 교전으로 캄보디아군 1명이 숨지자, 탁신의 딸인 패통탄 친나왓 당시 태국 총리가 훈 센에게 전화를 걸어 '삼촌'이라고 부르며 양국 지도자의 적은 태국군 제2 사령관이고, 국경 분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두 가문의 친분에 호소해 분쟁을 해소하려는 의도였지만 훈 센은 '조카'와의 통화 내용을 자국 정치인들에게 공개했다. 이 일로 분노한 태국 여론에 패통탄 총리는 직무가 정지됐다.
훈 센이 왜 갑자기 탁신 가문의 뒤통수를 쳤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를 정치적 이유라 본다. 현재 캄보디아의 총리는 훈 센의 아들인 훈 마넷이다. 훈 마넷은 아버지의 후광을 받고 있지만, 아직 정치적인 입지가 탄탄하지 않은 상황이다. 친구보다는 전통적인 민족 감정을 자극해 본인과 아들의 자국 내 입지를 더욱 강화한 것이다. 실제로 삼촌과 조카의 통화 내용이 공개되자 태국에서는 패통탄 반대 시위가 일어났으며 캄보디아에서는 훈 마넷 지지 집회가 이뤄지기도 했다. 양국의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이번 분쟁은 훈 센 가문과 태국 군부에 더 도움이 됐다. 훈 센 가문은 숙적과 전투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명분을 얻었다. 승계 작업도 탄력을 받았다. 태국 내에서는 정치적·군사적 혼란을 수습한 군부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고통은 국민들이 받았다. 분쟁 초기 캄보디아가 날린 로켓포가 태국의 편의점에 떨어지면서 민간인 6명이 사망했다. 이 중 가족 세 명을 한꺼번에 잃고 홀로 살아남은 아버지도 있다. 지도자들이 본인의 입지 강화에만 골몰하고 과실을 따 먹을 때 정작 피해는 민간인과 군인이 입은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태국과 캄보디아 분쟁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이 그렇고, 잊을 만하면 도발을 하는 북한이 그렇다. 공교롭게도 두 나라 모두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이뤄지지 않는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상식을 벗어난 판단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 정치권은 늘 이들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응에 나서야 한다. 정치적인 이득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피해는 국민이 입는다. 정치와 무력은 항상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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