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장 "북한은 남한과 대화를 원치 않는다"[AK라디오]

"'김여정 담화'는 쐐기 박는 선언"
남한 "하나의 민족" VS 북한 "다른 나라"
"일본 수준의 핵잠재력 확보 필요"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7월28일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없고,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담화문을 냈다. 29일에는 '조미 사이의 접촉은 미국의 '희망'일 뿐이다'라는 북·미 대화와 관련한 담화문을 냈다. 이례적이다. 남한과는 대화할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반면 미국과는 대화의 문을 열어뒀다. 김정은 위원장의 의도는 무엇일까.


7월 29일 아시아경제 'AK라디오'와 전화로 인터뷰한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면 김정은의 셈법을 바꿔야 한다"며 "북한이 어떤 요구를 한다고 해서 그걸 일방적으로 수용하면 '김여정 하명법' 얘기가 나올 수 있다. 거기에 상응하는 것을 요구해서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성장 부소장은 '김여정 담화'는 "과거의 접근 방식 가지고 북한을 괴롭히지 말라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정성장 부소장은 '김여정 담화'는 "과거의 접근 방식 가지고 북한을 괴롭히지 말라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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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이재명 정부 출범 54일 만에 처음으로 입장을 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이재명 정부는 북한에 대한 삐라 살포 중단, 대북 방송 중단 등의 조치를 통해서 남북 대화를 재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북한은 남북 대화 재개에 그 어떤 이해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우리와 대화할 뜻이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 정부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남북한 간 화해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의 한류가 북한으로 올라오는 걸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파워엘리트나 국민이 남한에 대해서 동경심을 갖게 되면 북한 체제의 가장 중요한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은 남한과 대화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자꾸 남측에서 대화하자고 하니까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김정은의 대변인 격인 김여정이 직접 나서서 담화를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 담화는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에 구속돼 피곤하고 불편했던 역사와 결별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 북한이 주장했던 '두 국가론'을 다시 강조했다고 봐야 하나.

그렇다. 이재명 정부는 남북한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북한에 접근하고 있다. 하나의 민족이면 결국은 언젠가 통일돼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북한은 핵무기 빼놓고는 남한에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다. 북한의 젊은 청년들이 남한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걸 보고 동경심을 갖고 남한으로 탈북해 들어오는 이런 것들이 체제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은 남과 북은 이제 완전히 다른 나라다,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다른 국가라고 내부적으로 계속 교육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 정부가 북한과 대화하자는 것은 북한 입장에서 보면 방해하는 것이다.


우리한테 '틀을 바꿔서 봐라, 남북 관계가 달라졌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해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김정은이 이미 남북한은 더 이상 동족이 아니다, 적대적인 두 국가라고 선언했으니까 자꾸 과거의 접근 방식 가지고 북한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 괴롭히지 말라는 이런 얘기다. 우리가 선의를 가지고 대화를 제의하는 것이 북한에는 스토킹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나는 그냥 조용히 남남으로 살고 싶으니까 더 이상 만나지 말자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북한에서도 호응하고 이러면서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부는 듯했는데….

이러한 조치들이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화해 정책이 무의미한 건 아니다. 나름대로 유용하다. 하지만 북한을 협상 테이블, 대화 테이블로 나오도록 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면 김정은의 셈법을 바꿔야 한다.

정 부소장은 "대북확성기 중지 등 긴장완화 조치는 유용하지만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끌어들이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004년 6월 16일 서부전선 오두산전망대에서 대북확성기가 철거되는 모습. 연합뉴스

정 부소장은 "대북확성기 중지 등 긴장완화 조치는 유용하지만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끌어들이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004년 6월 16일 서부전선 오두산전망대에서 대북확성기가 철거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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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얘기인가?

북한은 문재인 정부 당시 남북 경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문재인 정부는 순수한 의지를 가지고 종전선언을 하자고 얘기했다. 하지만 종전선언을 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무엇이 북한에 이득이 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종전선언이 북한 비핵화로 가는 입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것을 싫어하니 종전선언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핵무기를 그대로 가진 상태에서 북한이 대화 조건으로 언급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면 우리 내부에서 불안감, 내부 갈등이 커지지 않을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다음 달 중순 예정된 '을지 자유의 방패' 한미연합훈련을 조정하는 것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 이렇게 얘기했다.

한미연합훈련이 중단되면 많은 국민은 그럼 한미동맹이 해체되는 것 아니냐, 약화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북한이 요구한다고 해서 그걸 수용하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한 접근 방법이다. 북한이 뭔가를 요구하면 우리도 거기에 상응하는 뭔가를 요구해서 받아내야 한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시각이나 북한이 요구하니까 들어줘야 한다는 시각 둘 다 적절하지 않다. 북한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한다면 최소한 영변 핵시설에 대한 사찰 재개 정도는 받아내야 하지 않을까. 북한이 어떤 요구를 한다고 해서 그걸 일방적으로 수용하면 '김여정 하명법' 같은 얘기가 나올 수 있다.

지난 3월12일 경기 파주시 무건리 훈련장에서 2025년 FS/TIGER 연습 일환으로 열린 ‘한미 연합 WMD 제거작전 훈련’.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3월12일 경기 파주시 무건리 훈련장에서 2025년 FS/TIGER 연습 일환으로 열린 ‘한미 연합 WMD 제거작전 훈련’.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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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북한이 그래도 뭔가 반응을 했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던데.

무시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들은 척도 안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듣다 듣다 이제 더 못 견디겠다 해서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김여정의 담화는 후자다. 보수 정부는 지나치게 강경하게 제재와 압박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고, 진보 정부는 지나치게 대화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편향성을 넘어서서 좀 더 큰 그림을 가지고 북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하고 긴밀하게 대북 협상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협의가 필요하다. 전략적 사고가 전혀 없다는 게 문제다. 북·미 대화를 지원하겠다? 북·미 대화 지원하면 그게 반드시 우리한테 좋은 것인가. 과거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난 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킨 적이 있다. 이게 우리에게 좋은 것인가? 미국을 어떻게 설득하고, 북한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이 없다.


또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헌법에까지 명문화했다. 그런 북한에 비핵화를 계속 추구하겠다고 하면 북한이 대화에 응할까? 3단계로 나누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북한의 핵 능력 동결, 두 번째는 핵 감축, 세 번째가 비핵화다. 핵 동결로 시작해서 핵 감축이 어느 정도 시작만 돼도 큰 성과다.


현재 흐름은 우리 정부가 취하는 기조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진보 세력들은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대화 지상주의에 빠져서 이벤트성 상봉에 매달리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게 해서 긴장 완화가 되면 좋지만 동시에 북한은 핵무기를 계속 늘려가고 있다.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완화하는 게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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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도 핵무기는 아니어도 핵잠재력은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 북한과 긴장 완화를 추구하면서 최소한 핵무장까지 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핵 잠재력 정도는 확보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이 감축되더라도 일본 정도의 핵 잠재력을 갖고 있으면 정치 지도자가 결단하면 수개월 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그러면 국민이 좀 덜 불안해할 것이다.


북·미 간에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은 사실 북한하고 핵 감축 협상을 하고 싶어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지금은 동결조차도 쉽지 않다. 북한에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아낼 것인가에 대해서 한미 간 합의해야 한다. 그런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우리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한 문제는 우리가 주도하면서 미국을 설득하고 이해관계를 맞춰가야 한다.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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