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12일 만에 미국 출장길에 올라 그 배경과 성과에 재계의 관심이 쏠린다. 본격적인 미국 상호관세의 발효를 사흘 앞두고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 상황과 맞물려 이 회장이 미국에서 우리 정부를 측면에서 지원할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린다.
이 회장은 29일 오후 3시50분께 김포공항에 도착한 후 미국 워싱턴D.C.로 출국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 회장은 공항에서 만난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고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인사만 남기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이번 미국행은 이 회장이 사법족쇄를 푼 후 선택한 첫 해외일정이다. 일각에선 이달 말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열리는 글로벌 테크 최고경영자(CEO) 모임인 구글 캠프에 참석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그보다 미국 워싱턴을 먼저 가게 됐다. 미국에 가기에 앞서선 지난 24일 비공개로 이재명 대통령과 만찬을 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관세 협상과 대미 투자 전략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만찬이 미국 출장으로까지 이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회장은 우선 미국에서 주요 파트너사와 글로벌 비즈니스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신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 정부와 미국 트럼프 행정부 간 관세 협상에서 히든카드로 등판하는 등 관련 일정을 소화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진다. 이 회장이 관세 협상을 지원 사격할 경우 내세울 수 있는 유력 카드로는 반도체가 꼽힌다. 미국 현지에서 계획하고 있는 반도체 관련 투자 규모를 늘리고 미국 기업들과의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술 협력 등을 추진하는 방안을 트럼프 행정부에 제시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현지 기업들과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같은 주 테일러에도 파운드리 공장을 하나 더 짓고 있고, 이 공장은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은 2030년까지 미국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을 위해 370억달러(약 54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단 계획도 밝힌 상태다. 이 회장의 출장 결과에 따라 이 규모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엿보인다.
전날 발표한 테슬라와의 22조8000억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급 계약은 미국 현지 관계자들을 만날 때 이 회장의 어깨를 든든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체결한 역대 최대 규모의 공급 계약으로, 그 기술력을 인정받은 결과로도 풀이되고 있다. 이 계약에 따라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내년부터 테일러 공장에서 테슬라의 차세대 AI칩 AI6를 생산할 예정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계약 발효 이후 "165억달러(약 22조8000억원) 수치는 단지 최소액"이라며 "실제 생산량은 몇 배 더 높을 것 같다. 이 전략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재계에서는 막판 한미 협상 과정에 힘을 싣기 위한 기업 총수들의 방미가 이어지고 있어 이들의 활약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이 회장에 앞서 전날은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방미길에 올랐다. 김 부회장은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제안한 조선 산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MASGA)'의 구체화 등을 위해 우리 협상단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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