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오랜 국채 발행 관행을 버리고 금리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장기채를 발행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금리가 내려간 뒤에 장기 채권 발행 확대를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는 금리 부담 때문이다. 장기 국채는 장기간 이자를 지급해야 하므로, 발행 시점의 금리가 곧 정부의 장기 차입 비용으로 고정된다. 즉 현재처럼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시점에 장기 국채를 발행하면 높은 이자비용을 10~30년간 떠안게 되는 셈이다. 반대로 금리가 내려간 이후 발행하면 정부의 장기 이자 부담을 낮출 수 있다.
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압박해 온 트럼프 대통령도 베선트 장관과 같은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당분간은 만기가 매우 짧은 국채만 발행할 것"이라며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물러나면 금리를 크게 낮춘 뒤 장기물 발행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 교체 이후 본격적으로 장기 국채 발행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는 과거처럼 시장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일정한 패턴으로 국채를 발행해온 전통적 관행과는 다른 모습이다. 과거 미 재무부는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채권을 발행해왔다. 정부가 시장을 재려 들면 투기적 수요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장기적으로는 국채 금리를 오히려 끌어올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금리 흐름을 살피며 발행 시점을 조율하는 시장 타이밍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30일 발표되는 분기별 환매공고를 통해 공식적인 차입 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재무부가 당분간 20~30년 만기 장기 국채 발행 속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정부의 자금 수요가 계속 증가하면서 단기 국채 발행 비중은 점차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마이클 폴크렌더 재무부 부장관은 서면 성명을 통해 "재무부는 시장 참여자들의 의견을 참고해, 기존처럼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채권을 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투자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신호를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장기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이미 부담이 커진 채권 시장에 추가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단기채와 장기채는 각각 장단점이 뚜렷하다. 단기채는 이자율이 낮아 정부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지만, 금리 변동에 민감하다. 반대로 장기채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지만 이자율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 장기물 금리가 상승한 배경은 인플레이션, 관세 부담, Fed 독립성 논란, 장기 재정 전망 악화 등이 거론된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행정부가 단기물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재정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시장 타이밍'을 노린다는 정부의 메시지 자체가 오히려 국채 셀오프(대량매도)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WSJ는 "다른 일각에서는 시장 타이밍에 대한 논의가 과거 행정부들이 우려했던 이유로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며 "정부의 차입 결정에 대한 위험성이 커지고 투자자들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투매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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