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오는 31일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상호관세 부과 시한(8월1일) 하루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 담판을 벌이는 것이다. 총 8차례에 걸친 고위급 협상 끝에 합의에 이른 일본이나 유럽연합(EU), 타결이 가시권인 중국과 달리 한국은 고위급 관세 협상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협상은 통상 담당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김정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주말까지 벌인 협상의 최종안을 조율하는 자리로 한국의 대미 투자 규모, 한국 측 반전카드로 꼽히는 조선업 협력안,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 등이 핵심 의제에 오를 전망이다.
미국 측의 요청으로 한미 2+2 통상 협의가 돌연 연기된 24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출국을 취소하고 공항을 나서고 있다. 2025.7.24.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한국은 대미 투자 규모를 1000억달러(약 138조원) 이상으로 키우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관세율 인하를 지렛대로 머니게임을 벌이는 미국은 한국에 최대한의 압박 공세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한국의 경제 규모가 앞서 5500억달러 대미 투자를 약속한 일본의 약 3분의 1 수준이지만 대미흑자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699억달러로 일본(690억달러)과 비슷하다는 논리를 내세워왔다. 한국도 일본이 약속한 대미 투자 금액만큼의 협상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인 셈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일본과의 협상장에서 실무자들끼리 합의한 액수에 수차례 수정을 거듭하며 투자 금액을 1500억달러나 더 얹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의 관세 협상 타결 이후 한국을 겨냥해서도 "돈 내고 관세 낮출 수 있다"고 발언하며 대미 투자금을 높일 것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결국 합의한 5500억달러나 미국 측이 처음 한국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4000억달러나 한국에는 현실적으로 부담스러운 금액이라는 점에서 액수 합의에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월 현대차에서 루이지애나주 제철소 건립을 통해 총 21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공식 발표한 것을 포함한 한국의 기(旣)투자 계획건도 이번 대미 투자 약속에 포함할지도 관건이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이 대미 투자 규모를 일본이나 EU 수준(6000억달러)으로 늘릴 여력은 없는 상황인 만큼 우리가 가진 강점인 조선 등의 협력 분야에서 미국이 만족할 만한 협상 카드와 합의를 찾아가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고위급 관세 협상 초기부터 '확대균형'을 협상의 큰 틀로 제시하며 농축산물 추가 개방 등을 핵심 의제로 밀어붙였다. 확대균형은 한국산 수출을 줄이지 않고 한국의 수입과 투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무역수지 적자 상황을 교정하겠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미국 측이 원하는 30개월령 소고기 수입과 쌀 수입 확대 등에서 큰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26일 '한미 간 관세 협상 품목 안에 농산물이 포함돼있다'고 밝히면서 그간 레드라인으로 여겨졌던 농축산물 추가 개방에도 일부 협상 가능성이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 주말 실무 협상에서 미국 측에 농축산물 추가 개방에서 좀 더 진전된 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반도체 관세를 "2주 후에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힌 만큼 이번 한미 간 관세 협상에서 반도체 관세율도 핵심 쟁점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방위비 분담금 조정과 첨단기술 협력 등 안보 문제도 협상 테이블에서 폭넓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31일에는 조현 외교부 장관은 미국 측 카운터파트인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도 회담한다.
이날 새벽 유럽연합(EU)도 일본과 같은 관세율 15% 합의에 타결보며 우리의 목표선도 15%가 됐다. 합의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한국이 받게 될 관세율은 15%가 된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EU와 일본에 부과하기로 한 세율인 15% 수준으로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대통령실은 주말에도 줄회의를 열고 미 현지에서 전해지는 협상 상황을 공유하면서 전략 수립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최대 협상 대상자인 중국과 EU에 협상 뒷순위로 밀려난데다 상호관세 부과 시한을 단 하루 앞두고 '마감 시한'과 '목표 인하율' 등 협상 포인트를 모두 미국 측에 내주고 벌이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협상인 만큼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내 업적으로 내세울 만한 카드를 내주면서 우리측의 실질적인 손해는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짚었다. 양주영 산업연구원 통상정책실장은 "과거 트럼프 1기때 중국이 미·중 무역 합의에서 약정한 농산물 구매를 실행하지 않은 경험을 학습한 만큼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투자(수입) 계획을 이행할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구체적이고 실행력 있는 안을 짜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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