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창업 이후 기업이 본격 성장하는 '스케일업' 단계를 유럽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 개편에 나서 주목된다. 창업부터 기술 고도화, 해외 진출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의 전략으로 엮은 스타트업·스케일업 전략을 최근 발표한 것으로 규제 완화와 자금 유입, 인재 유치까지 전방위 대책을 담고 있다.
스타트업들이 더 좋은 경영환경을 찾아 유럽을 속속 이탈하는 흐름이 짙어지자 전(全) 유럽 차원의 중장기 대응 전략을 마련한 것이다. 각종 규제와 비용의 증가 등으로 창업 및 스케일업 환경이 악화하고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움츠러드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28일 글로벌 스타트업계 등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5월 해외로 유출되는 유럽 기술 스타트업을 붙잡아두기 위한 공동 대응 전략인 '창업과 성장을 위해 유럽을 선택하라(Choose Europe to Start and Scale)'라는 방안을 공개했다. EU 차원의 제도 개편과 자금 조달, 인재 유치를 통해 유럽을 '스케일업 친화형 대륙'으로 만들겠다는 게 이 전략의 목표다.
EU 집행위는 창업 이후 단계에서 기업이 유럽 안에서 성장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혁신 친화적 환경 조성 ▲자금 조달 환경 개선 ▲시장 진입 및 확산 지원 ▲우수 인재 유치 ▲공동 인프라 구축 등 5대 분야 제도 정비에 착수했다. 각국이 따로 운영하던 파산·세제·노동 규정을 일원화하고, 연기금 등 민간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한 '스케일업 유럽 펀드'와 딥테크 전용 투자기구도 마련한다.
대학·연구기관의 기술이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도록 기술이전 절차는 간소화하고, 창업자 인센티브도 확대한다. 외국인 창업자를 위한 '블루카펫' 정책으로 비자 발급을 신속화하고, 스톡옵션 세제 개선과 실증 인프라 통합도 추진한다.
이 같은 전략은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의 위기감에서 출발한다. 유럽 출신 유니콘 기업은 올해 기준 110개로, 미국(687개)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008~2021년 사이 탄생한 유럽 유니콘의 30%가 더 나은 투자 환경을 찾아 EU 밖으로 이전했으며, 현재 글로벌 스케일업 기업 중 유럽에 본사를 둔 기업은 8%에 그친다. EU 집행위는 "유럽 스타트업은 종종 연구소 수준의 아이디어에서 멈추고 있다"며 "창업 이후 단계에서 제도 기반의 고도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창업·성장 단계별 지원 프로그램을 다수 운영하고 있다. 민간투자 주도 기술창업 프로그램인 팁스(TIPS), 예비유니콘 육성, 각종 창업패키지를 통해 기술력 있는 기업을 발굴하고 스케일업을 연계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개별 프로그램 중심으로 흩어져 있어 정책 간 연계성을 확대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제도적 역량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스타트업 전주기 지원을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창업→성장→회수→글로벌 진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연기금 투자 유도, 기술 스핀오프 지원, 규제 해소 장치 마련 등을 추진 중이다. EU의 전략 방향성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글로벌 확산까지 이어지는 전략적 조율과 실행력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대표적인 외국인 창업 유치 프로그램인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는 비자 지연, 지원금 집행 시기 불일치 등의 문제로 지난해 선발 규모가 당초 60곳에서 40곳으로 줄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창업 지원을 넘어서 글로벌 확산까지 연결되는 '전략적 큰 그림'을 국가 차원에서 구체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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