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카이스트(KAIST)와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4개 과기원에 800명 규모의 인공지능(AI) 단과대를 설치하는 계획을 논의한다. 지방의 AI 단과대를 통해 미래 핵심 산업의 최고급 인재를 길러내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28일 대통령실과 정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이르면 금주 비경 TF를 연다. 정부 관계자는 "대미 관세 협정으로 일정은 유동적"이라면서도 "오는 30일 TF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카이스트, GIST, DGIST, UNIST 등 4개 과기원에 AI 단과대를 만드는 방안을 보고받는다. 단과대에는 4~5개 학과를 두고 200여명의 학생을 받는 안이 거론된다. 4개 과기원에 800명 규모의 AI 단과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예산은 단과대당 80억원으로, 기획재정부는 내년부터 4개 단과대를 동시에 설치할 재원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AI 단과대는 이 대통령 주요 공약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로서 "지역별 거점대학에 AI 단과대학을 설립하고 석박사급 전문 인재를 더 양성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취임 후 첫 산업 현장 방문지도 울산 AI데이터센터로 정했다. 이 대통령은 직접 출범식에 참여해 "혁신 인재 양성에 적극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4대 과기원에 권역별 AI총괄센터를 두는 정책도 보고서에 포함됐다. 센터는 주변 대학에 기술 자문을 해주고 표준 AI 교육과정을 설계해 배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과기원이 지역에서 AI 교육을 지휘하는 일종의 '컨트롤타워'가 되는 셈이다. 지방 주요 국립대는 산업·학계·연구기관의 실증을 수행하는 거점으로 만들고, 사립대는 지역산업을 기반으로 AI 분야를 특성화하도록 유도한다.
비상 경제현안을 논의하는 TF에 이 같은 방안이 보고된 것은 대통령실에서 AI 인재 대책이 시급한 과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애초 정부는 전 국민AI 등의 대책을 먼저 추진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전 국민AI는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국민에게 선진국 수준의 AI를 무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정책 우선순위를 정리하면서 '최고급' 인재 확보를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AI 부문 인력 공급은 산업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지난 5월 말 발간한 '주요국 AI 인재 양성 및 유치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AI 기업 2354곳 중 81.9%가 인력이 부족한 상태다. 고용노동부는 현재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2027년 AI 인력 1만28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연구개발(R&D) 분야 고급인력 부족이 가장 심각하다는 게 고용부 분석이다.
AI 인재 유출은 더 심각하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지난달 공개한 '한국의 고급 인력 해외 유출 현상의 경제적 영향과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AI 인재 순유출입수는 -0.36명이다. 플러스면 인재가 유입되고, 마이너스면 인재가 빠져나간다는 뜻인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에 속한다. 경쟁국인 독일(2.34명), 미국(1.07명)과 비교하면 크게 뒤처진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AI 단과대 등을 통해 빠르게 인재를 육성하려면 과기원이 가장 효율적일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카이스트의 경우 2019년부터 이미 AI 대학원을 설립했고 국내 최초로 AI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또 4대 과기원은 지난달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AI 포스트닥터(박사후연구원) 400명 채용을 시작했다. 정부 관계자는 "순수 AI 분야는 과학 부문에 집중하고 있는 과기원에서 연구 성과가 잘 나올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도 과기원의 장점이다. 2023년 1월 기획재정부는 공공운영위원회를 열고 과기원을 기타공공기관에서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해제에 따라 인건비 총액 규제, 블라인드 채용, 여성의무고용 등의 규제에서 벗어났다. AI 단과대를 설치하면 과기원 자체 판단에 따라 세계적인 석학을 교수로 초빙하거나, 박사후연구원을 대대적으로 집중적으로 선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을 중심으로 AI 대책을 마련한 것은 '지방분권'이라는 정부 철학을 반영한 결과로도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과학기술 분야 연구자의 자율성과 처우 개선을 약속하면서 지역기반 생태계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지역의 과학기술원·지역거점 국립대·세계 유수 대학이 협력하는 글로벌 공동연구 허브를 구축하겠다고 공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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