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의원 술자리 난투극…지방정치 '민낯' 드러내

중앙당 '자격정지 1년' 징계는 사실상 면죄부
시민들 반응 '싸늘'…"사퇴가 최소한의 도리"
지방의원 신뢰도 추락에 품격·자질 논란 확산

더불어민주 전남도당 회의. 독자 제공

더불어민주 전남도당 회의.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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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극심한 수해로 전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가운데 여수시의회 의원 2명이 술자리에서 고성과 함께 주먹다짐까지 벌여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두 의원은 지난 23일 오후 여수 한 식당에서 과거 상임위 자리 등 사안을 놓고 언성을 높이다 감정대립 끝에 결국 몸싸움을 벌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직자는 언행을 삼가고 위기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고 경고한 지 하루 만이다. 더군다나 당시 전국이 기록적 폭우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공직자의 기본적 품격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두 의원은 난투극을 벌인 사건이 알려지면서 체면을 구겼고, 뒤늦게 사과문을 냈다. "뼈저리게 반성한다", "질책을 달게 받겠다"는 익숙한 문구가 되풀이됐다.


민주당 지도부는 신속하게 대응했다. 전남도당이 중앙당에 비상 징계를 요청한 지 하루 만에 민주당은 두 의원에게 '당원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결정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중징계'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자격정지 1년은 실질적 정치적 책임과는 거리가 먼 처분이다. 다음 지방선거에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지만, 정당 내부의 공천 구조를 아는 이들에게 그것은 곧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올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징계보다 복권이 쉬운 정당 정치 구조 속에서 1년은 그리 길지 않은 '정치적 유예 기간'일 뿐이다.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시의원 개인의 일탈이라기엔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다. 한 시민은 "재난 상황에 술자리를 한 것도 모자라 싸움까지 벌인 사람들을 어떻게 다시 뽑느냐"며 "사퇴가 최소한의 도리"라고 말했다. 지역 커뮤니티 곳곳에서도 '면피용 사과', '정치인 자격 없다' 등 날 선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은 단지 두 명의 시의원이 술을 마시고 싸운 문제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지방의원이라는 직위가 갖는 무게에 비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들의 자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실제 일부 지역에서는 선거 공천이 친분, 연줄, 조직 동원력에 좌우되며, 전문성이나 도덕성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에선 정당이 책임 있는 인물 검증을 하지 않는 한 유권자의 선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방의회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민주주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 정치는 시민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과정이지만, 지방정치는 그 중요성에 비해 지나치게 방치돼 있다. 그러다 보니 의원 개개인의 일탈이 반복되고, 그 일탈은 무기력한 징계와 사과문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얼마 후 또다시 비슷한 사건이 터진다.


지역 정치의 신뢰 회복은 강력한 책임 추궁과 구조 개선 없이는 불가능하다. 시의원이라는 자리가 지역사회 품격을 결정한다면, 이번 사건은 단순히 시의원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정치 전체의 품격을 무너뜨린 일이다.







호남취재본부 이경환 기자 khlee276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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