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한국의 외교·통상 전략도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단순한 '수출 드라이브'가 아닌, 미국의 기술동맹 전략과 중국의 생태계 자립화에 대응할 국가 수준의 통상·기술·안보 복합 전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최종현학술원은 전날인 24일 서울에서 '글로벌 복합위기와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전략'을 주제로 포럼을 열고 인공지능(AI)·반도체 기술 주도권 경쟁과 통상 리스크, 대중·대미 전략 재설계 필요성을 논의했다고 25일 밝혔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이 각각 기술 패권을 중심으로 동맹과 생태계를 재편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제조업 강국이라는 기존 위상에 안주하지 말고 '전략적 기술 파트너'로의 역할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4일 서울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 복합 위기,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전략 방향’ 포럼에서 김유석 최종현학술원 대표가 개회사를 전하고 있다. 최종현학술원
원본보기 아이콘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중국은 그래픽처리장치(GPU)·파운드리·공정장비 등 반도체 전 영역을 아울러 AI 생태계 고속도로를 구축 중"이라며 "삼중 보조금 체계를 통해 생산과 소비, 장비까지 내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첨단 기술력 격차는 아직 존재하지만, 속도·자본·인재 측면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다"며 중국의 위협이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렵다고 봤다.
미국의 전략도 동맹국을 향한 기술 파트너십 요구로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권 교수는 "미국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나 AI 액션플랜을 통해 자국 중심의 기술 생태계에 동맹국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대응 중"이라며, "한국도 단순 생산기지에서 벗어나 전략적 생태계 설계자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AI 경쟁의 핵심은 개별 기술보다도 생태계 설계 역량에 달려 있다"며, 한국만의 '제3의 길'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인프라 설계자, 대기업은 자산·플랫폼 공유자, 스타트업은 고위험 혁신 주체로 분업 되는 생태계가 필요하다"며 "이런 체계를 뒷받침할 AI 팹 센터, 데이터 인프라, GPU 수급 체계도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의 '풀 스택' 전환과 미국의 리쇼어링 전략이 동시에 압박해오는 상황에서, 한국이 통상 전략과 기술 전략을 통합적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글로벌 산업 지도에서 주변화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금은 단순한 수출 전략이나 특정 동맹에 의존하는 시대가 아니라, 자강(스스로 강해짐), 연대(가치 공유국 협력), 포용(글로벌 사우스와의 연결) 세 축이 모두 필요한 시점"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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