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日처럼 돈 내면 관세 내려줄 것"…韓, 대미 투자 압박 가중

"日 시장 개방·투자로 관세율 15%로 내려"
'2+2 협의' 일방 취소당한 韓 부담 가중
한미 산업장관 회의는 오늘 예정대로 진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본이 사실상 돈을 주고 관세 인하를 구매했다며 다른 나라들도 일본처럼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 관세를 낮춰주겠다고 24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는 미국이 25일로 예정돼 있던 '한미 2+2 통상 협의'를 이틀 앞두고 일방적으로 취소한 상황에서 나온 발언으로,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에 일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게티이미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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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에 위치한 미 연방준비제도(Fed) 건물 개·보수 현장을 둘러보는 자리에서 취재진과 만나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돈을 내면 관세를 내려주느냐'라는 질문에 "그렇다. 허용하겠다"고 답했다.

이 발언은 지난 22일 타결된 미·일 무역 합의 과정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은 우리에게 5500억달러를 줬고 관세를 약간 낮췄다"며 "이후 일본은 자국 경제(시장)를 개방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은 경제 개방과 지불금(미국 투자)을 함께 제공했고 우리는 관세율을 28%에서 15%로 내렸다"며 "일본은 기본적으로 관세 인하를 구매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합의 전 일본에 통보한 상호관세율은 25%였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를 28%로 잘못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일본이 약속한 투자가 대출이 아닌 계약 체결 시 선지급하는 '사이닝 보너스(signing bonus)'와 같다고 강조했다.


앞서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고 쌀·자동차 시장 일부를 개방하는 조건으로 기존 25%였던 상호관세율을 15%로 낮췄다. 일본산 자동차의 경우 품목 관세가 25%에서 12.5%로 절반 인하되고 여기에 기존 2.5% 관세가 더해져 총 15%가 적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합의가 임박한 것으로 전해진 유럽연합(EU)과의 협상에 대해서는 "꽤 잘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른 국가도 있다"며 "모두 매우 큰 거래들로 미국은 어마어마한 돈을 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발언은 협상이 진행 중인 한국에도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날 미국은 한미 2+2 통상 협의를 이틀 앞두고 이메일을 통해 일방적으로 협상을 취소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의 개인 일정을 이유로 들었지만 한국의 투자 규모와 시장 개방 수준과 관련한 비공식 협의 과정에서의 불만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미국은 앞서 한국 정부에 자국 제조업 부흥을 위한 4000억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 조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한국은 국내 기업들과 수립한 미국 현지 투자 계획이 1000억달러 규모에 그치는 데다, 미국이 요구해 온 쌀 수입 확대 및 30개월령 초과 소고기 수입 허용도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으로 설정하고 협상안을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은 한미 2+2 통상 협의 취소와는 별도로 이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의 무역 협상은 예정대로 진행했다. 우리 측에서는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참석했다.


러트닉 장관은 협상에 앞서 이날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협상을 매우 매우 타결하길 원한다"며 "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합의문을 읽었을 때 아마 욕설(expletives)이 나왔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경계하기 때문에 한국이 일본의 협상 타결을 본 후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한일 간 유사한 무역 구조 속에서 미국 역시 양국이 경쟁 관계에 놓여 있음을 인식하고, 협상에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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