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셨죠? 저 아니던가요? 마침 아빠가 되어 부성애가 한창 자라던 시기에 이 작품을 만났어요.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만남이랄까요."
배우 조정석은 '좀비딸'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단번에 '이건 내 이야기'라고 했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딸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아빠 정환의 모습이 실제로 여섯 살 딸을 둔 자신과 겹쳤기 때문이다.
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너에게 나를 맡긴다'는 기분이었다. 연기라기보다 이미 내 안에 있던 감정을 자연스럽게 꺼내는 과정에 가까웠다"고 했다. 그는 "감정이 너무 잘 흘러나와서 오히려 조절이 과제였다"며 "어떤 장면에서는 눈물을 억누르느라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좀비딸'은 글로벌 누적 조회 수 5억회를 기록한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딸 수아(최유리)를 구하기 위해 아빠 정환(조정석)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로 영화 '인질'(2021), 드라마 '운수 오진 날'(2023)을 연출한 필감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조정석은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 안에 있던 부성애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이 부성애를 일깨운 건 아니다. 나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고 다만 몰랐던 것뿐"이라며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가 딸을 보니 그 감정이 명확해졌다"고 했다.
"딸이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태어났어요. 코로나19에 걸려 열이 39도까지 올라갔고 아내 거미와 제가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딸을 돌봤어요. 그 일이 있고 난 뒤에 '좀비딸'을 만났는데 그때의 절박함이 떠올라 더 와닿았어요. 딸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걸 수 있어요."
그는 '좀비딸' 속 감정 서사가 '부성애'라는 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감정선을 일부러 만들어내려 한 적이 없다. 나는 아빠이고 딸은 딸이라서 그냥 좋은 거다. 내가 부모로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책임감"이라고 설명했다.
작품 전반의 무게감과 달리 영화는 유쾌하다. 관객을 웃겼다 울렸다 한다. 조정석은 "심각하게 흘러가는 서사 속에 불쑥 튀어나오는 위트가 이 영화의 '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잡았다는 말이 이 작품을 가장 정확히 설명한다"며 "윤경호가 분장한 토르와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촬영 중 웃음을 참느라 몇 차례나 재촬영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월 '좀비딸' 촬영을 마치고 약 6개월 동안 온전히 휴식 중이다. 현재는 별도의 차기작 없이 재충전에 집중하고 있다. 조정석은 "최근 들어 확실히 느낀다. 나는 연기할 때 가장 즐겁고 충만하다. 아무리 쉬어도 다시 현장을 그리워하게 된다"고 말했다.
코미디 장르를 계속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고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얻으며 제법 여유가 생긴 듯했다.
"억지로 코미디를 벗어나려 하면 오히려 불협화음이 생겨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러운 게 가장 좋아요. 배역도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어요. 최근 드라마 '약한 영웅 2'에서 빌런으로 변신했을 때 지인들이 '나인지 몰랐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내 안에서 재밌게 와닿는 작품을 계속해서 하고 싶어요."
여름 시기 흥행 타율이 높아 '여름의 남자'라는 별명도 붙었다. 2019년 개봉한 '엑시트'(942만명)와 2024년 '파일럿'(471만명) 모두 손익분기점을 가뿐하게 넘기며 흥했다. 그는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러운 수식어"라고 말했다. "개봉 시기를 제가 정할 순 없지만 좋은 시기를 만나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기에 대한 철학도 분명하다. 조정석은 "훌륭한 배우는 결국 좋은 인격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며 "연기력과 인성이 비례하지 않으면 전달자의 진정성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좀비딸'이 가족, 친구, 부모, 자식 등 우리 곁의 소중한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도 이 작품을 통해 내가 몰랐던 감정이 이미 내 안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 감정을 관객도 함께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