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소멸시효 지나 빚 이자 갚았다고 시효이익 포기는 아니다”

"시효완성 후 채무 승인시 이익 포기" 판례 58년 만에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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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 소멸시효가 지난 상태에서 돈을 일부 갚았더라도 이를 곧바로 시효완성 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로 봐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기존 판례가 58년만에 변경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24일 A씨가 B 를 상대로 낸 배당이의 소송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B씨로부터 4차례에 걸쳐 총 2억4000만 원을 빌렸다. 이 중 1, 2차 차용금의 소멸시효가 지난 상태에서 B씨에게 1800만원을 갚았다. 이후 A씨 부동산에 대해 실시된 경매 절차에서 B씨가 원금 2억4000만 원 및 이자 2억2100만 원 등 총 4억6100여만 원을 배당받는 내용으로 배당표가 작성됐다. 그러자 A 씨는 "배당액이 실제 대여금을 넘는다"면서 B씨를 상대로 배당이의 소송을 냈다.


앞서 1심은 B 씨에 대한 배당액을 4억6100만 원에서 4억2200만 원으로 경정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A씨는 2심 재판에서 "1·2차 차용금 이자 채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원고가 1·2차 차용금 이자 채무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태에서 차용금을 일부 변제했으므로, 소멸시효 완성 이익을 포기했다고 봐야 한다"며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B 씨에 대한 배당액을 4억4300여만 원으로 경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판단을 다시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단지 소멸시효 기간이 지났다는 사정만으로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며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는지 여부는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어 "채무자가 시효완성으로 채무에서 해방되는 이익을 알면서도 그 이익을 포기하고 채무를 부담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시효이익 포기에 관한 의사표시 추정도 경험칙에 근거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 경우 시효완성의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본 1967년 2월 선고된 66다2173 판결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이를 변경한다"고 봤다.


이같은 다수 의견에 대해 노태악·오석준·엄상필·이숙연·마용주 대법관은 "추정 법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원심이 법리를 잘못 해석·적용한 것이므로 추정 법리에 관한 판례 변경은 필요하지 않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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