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쉬는 게 더 편해. 돌아다니다 보면 금방 땀이 식어."
22일 오전 광주 서구 쌍촌동 계수경로당(무더위쉼터).
낮 최고기온 34도 무더운 날씨에 이 곳 무더위쉼터엔 할머니 15~20명이 모여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이 곳 무더위쉼터는 2개의 방이 있는데, 한 쪽 방은 굳게 잠겨 있었다. 한 어르신에게 옆방의 용도를 묻자 "할아버지들이 가끔 들르는 곳이다. 어제도 4명 정도 쉬다 갔는데, 평소엔 분실 위험 때문에 문을 잠가 놓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무더위쉼터는 폭염에 취약한 어르신과 거동이 불편한 시민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지정·운영하는 공간이며,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곳 무더위쉼터는 외부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다.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은 거의 방문하지 않고, 밖이 더우니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로당 운영 시간부터 냉방시설 가동 등 모두 주로 운영하는 이들이 자율적으로 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어 방문한 한 공동주택 무더위쉼터도 상황은 마찬가지. 공동주택 내에 위치한 무더위쉼터는 경로당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경로당 내에 생활용품 등을 구매하기 위해 회비를 조금씩 걷으면서 자연스레 회원제가 됐다는 것. 때문에 외부인이 경로당을 이용하기엔 힘든 상황이었다.
한 어르신은 "이미 오는 사람들이 많아 포화상태고, 더 회원을 받지 않는다"며 "회원이 아니더라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외부인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이 곳 아파트 주민 김모(21) 씨도 "잠시 친구를 기다리다 들어가봤는데, 퇴짜를 맞았다"며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달가워 하지도 않고 굳이 방문하진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어르신은 무료로 탑승이 가능한 지하철과 역, 광주천으로 내몰리고 있다. 비슷한 시각 지하철에 탑승해보니 노약자석엔 어르신들이 가득했고 무더위에 땀을 식히고 있었다.
동구 금남로4가역 만남의 광장에도 어르신 수십명이 앉아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피했다. 어르신들은 간만에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활기띤 지하상가 이용객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 어르신은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왔다갔다 하거나, 광주천을 걷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며 "경로당 같은 곳은 이용하려 해도 이방인 취급을 받다 보니 가기 꺼려진다. 밖에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와 광주시, 5개 자치구 등에 따르면 광주지역엔 1,547곳의 무더위쉼터가 운영 중이다. 이중 경로당이 1,301곳(84%)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행정복지센터, 도서관 등 공공시설 142곳, 민간시설 54곳 등이다.
이처럼 폭염 취약계층을 위해 여름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되는 무더위쉼터가 대다수의 이용객들에게 외면받고 있어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됐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한 자치구 관계자는 "경로당엔 최대한 많은 어르신이 이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효율적 관리 등을 위해서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회원으로 운영되는 곳이 있다"며 "취약계층이 소외되거나 폭염에 노출되지 않도록 다방면으로 복지사업을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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