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과녁을 꿰뚫는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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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초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임명된 구윤철 부총리를 지난 5월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다. 야인이었던 구 부총리는 "대혁신이 불가피하다. 차기 정부는 무조건 인공지능(AI)에 올인(다걸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앞으로 5년이 대한민국 명운을 가를 중요한 시기라고 하면서 "과녁을 꿰뚫을 정도로 임팩트 있고 핵심을 찌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절실한 호소는 지난해 내놓은 저서 '레볼루션 코리아'에도 담겨 있다. 이 책에는 11가지의 혁신과제가 등장한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한 게 바로 'AI 경제 혁신'이다. 구 부총리는 이 섹션에서 "AI가 우리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바꿀 것이고 국가 역량을 총투입해야 한다"며 "AI와 현실을 결합해 세상에 없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구 부총리의 AI 정책은 앞으로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구 부총리가 AI를 강조한 건 침체한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유일한 돌파구이기 때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AI를 외치는 건 대세가 됐다. 이재명 정부는 AI에 100조원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걸 공약으로 내걸었고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포럼에서 경쟁력이 떨어진 우리 제조업이 살기 위해선 AI와 반드시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가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각종 보고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는 보고서에서 제조업 전반에서 AI를 포함한 자동화 기술을 적용하면 생산성이 최대 25% 향상된다고 내다봤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도 2030년까지 AI가 전 세계 제조업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이 14%(약 15조달러) 증가한다고 평가했다. 기업이 AI를 도입하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생산성이 1.5배 이상 크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AI를 도입한다고 해서 이런 생산성 향상이 저절로 이뤄질 리는 없다. 최근 만난 국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AI를 도입해도 일하는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생산성 향상은 무의미하다"고 단언했다. 전자 업계에 종사하는 이 CEO는 "예를 들어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AI가 도입되기 전 5일이 걸렸다 치면 AI를 적용한 후엔 이틀로 대폭 줄었다"고 소개했다. 분명 AI 도입에 따른 업무시간 단축 효과는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라고 했다. 보고서 기한이 그 이전과 같아 업무 사이사이 공백이 크다는 것이다. AI 도입으로 업무 단위별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체계적인 시간 관리가 뒷받침하지 못한 결과다. 결과적으로 생산성은 AI 도입 이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요즘 경영계에선 한국의 대응 속도가 글로벌 경쟁에 비해 지나치게 느리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제조업 부활을 위해 로봇 기술을 결합하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고 중국은 생산비용을 낮춰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데, 한국은 휴머노이드 대응 전략뿐 아니라 업무 역량 측면에서도 뒤처진다는 것이다. 누적되면 국가 차원의 산업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는 주 4.5일제 시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적어도 현재와 같은 생산성이 담보돼야 가능하다. 하지만 AI를 활용하면 업무시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누구도 말을 못 한다. 구 부총리가 말한 '과녁을 꿰뚫는 정책'은 이에 대한 분석이 나와야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최일권 산업IT부장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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