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학박사' 따도 불안한 과학자들

이공계 인재 유출·의대 쏠림
과학 투자 확대·처우 개선해야
AI 존재감 中 과학 굴기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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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나오면 최소한의 성공이 보장되지만 공대 졸업하면 10년 이상 공부해도 불안합니다."


이달 초 이재명 대통령이 대전에서 진행한 타운홀 미팅에서 자신을 기초과학연구원(IBS) 출신이라고 밝힌 공공연구노조 IBS 지부장의 발언이 과학기술계에 회자된 적이 있다. 박사후연구원(포닥연구원)으로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연구를 묵묵히 하지만 대우는 열악하고 보상 역시 크지 않다고 밝히면서 성공이 보장된 의대로 인재들이 몰리는 것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한 것이다. 타운홀 미팅 이후 이 대통령은 하정우 AI(인공지능) 미래기획수석을 IBS에 보내 현장 목소리를 듣고 기초과학 지원에 대한 정부 의지를 전달했다.

IBS 지부장 발언이 떠오른 것은 최근 기자가 방문한 서울대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서울대에서 처음 진행한 미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진로 세미나에 석·박사생은 물론 학부생까지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 대학 박사 출신이자 올해 8월 메타에 취업할 예정인 연구원은 "연공 서열이 아닌 성과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받고 투자와 지원이 충분한 곳에서 AI 선진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미국 빅테크에 취업한 이유를 설명했다. 국내 테크 기업에선 기껏해야 1억원 남짓 연봉을 받을 때 글로벌 빅테크에선 초봉만 5억~6억원에 달하는데 이를 마다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 AI 인재들이 해외 문을 두드리는 동안 중국에선 또다시 혁신이 일어났다. 베이징 소재 스타트업인 '문샷 AI'가 이달 출시한 거대언어모델(LLM) '키미 K2'가 뛰어난 성능을 보인 것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키미 K2의 탁월한 성능을 '딥시크급 충격'으로 표현했다. 2023년 문샷 AI를 창업한 양즈린은 카네기멜런대 컴퓨터과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페이스북과 구글을 거쳐 현재 칭화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가 미국에서 학위를 따고 빅테크에서 근무하다 중국으로 돌아온 건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과학자를 '영웅'으로 대접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 미국의 강력한 견제 속에서도 최첨단 혁신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며 중국 AI 존재감을 키우게 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 목표 달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과학계는 환영하면서도 어떻게 달성할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품고 있다. 인재를 끌어안기 위한 파격적인 대책 없이 해외 유출 행렬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학들은 컴퓨터공학 관련 전공 증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공대가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의 과학 굴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면밀히 찾아야 한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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