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보이고 경제도 호황인 가운데 주요 기업들이 이례적으로 줄줄이 대규모 감원에 나서고 있다.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인력 감축이지만 기업들이 이를 숨기고 있다고 미 경제 매체 CNBC 방송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빈드 크리슈나 IBM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인사부 직원 200명을 해고하고 AI 챗봇으로 대체했으며, 다른 곳에 재투자하며 전체 회사 직원 수는 늘었다고 밝혔다. 핀테크(금융+기술) 기업 클라르나의 세바스찬 시미아트코프스키 CEO는 지난 5월 CNBC와의 인터뷰에서 AI에 투자하며 직원 수를 약 40% 줄였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은 이례적으로 AI로 인한 감원 사실을 알렸으나, 전문가들은 IBM과 클라르나만 AI로 인해 인력 감축에 나서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대다수 기업은 조직 개편, 구조조정, 최적화 등 이유를 대지만 이 뒤에 AI가 숨어 있다는 지적이다.
크리스틴 잉 하버드대 교수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단지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인 AI 주도의 인력 재편성"이라며 "극소수의 기업만 '우리는 AI로 사람을 대체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캔디스 스카버러 파슨스 사이버보안·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디렉터는 "최근 호실적을 보면 해고가 재정난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해고 시점은 대규모 AI 시스템 도입과 수상할 정도로 일치한다"고 짚었다.
기업들이 AI로 인한 감원을 숨기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잉 교수는 "이러한 침묵은 전략적"이라며 "AI로 대체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는 것은 직원, 대중, 심지어 규제기관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모호하게 말하는 것은 분위기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실제로 듀오링고는 계약직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AI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반발에 직면해 계획을 철회했다.
위험 회피도 있다. AI가 큰 성과를 못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IT 아웃소싱 기업 코넥스트 글로벌의 테일러 고처 부사장은 "최근 감원의 배경에는 확실히 AI가 있다"면서도 "기업들은 자동화에 막대한 투자를 하지만 때로는 그 선택을 되돌려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밝혔다. 그는 "AI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기업들은 조용히 아웃소싱이나 해외 인력을 재채용한다"고 설명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5년 미래 직업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고용주 중 41%가 향후 5년 내 AI 자동화로 인한 감원을 계획하고 있다. AI 기업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자사의 클로드 같은 생성형 AI가 초급 사무직의 절반을 대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업들이 AI로 인한 고용 변화에 대해 투명해지는 전환점이 오겠지만, 그때가 되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고 잉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해고 규모는 매우 커질 것이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적응뿐"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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