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땅 접수한 K조선…"매년 배 10척씩 만들 것" 죽어가던 美조선업에 불 지폈다 [르포]

한미 조선 협력 상징, 한화 필리조선소 가보니
한화 DNA 이식 아카디아호 진수 반년 앞당겨
주황색 골리앗 크레인에 'Hanwha' 로고
年 선박 건조량, 현재 1척→5년 내 10척
쇠락한 조선소, 美 조선업 부활 전초기지로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네이비 야드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 해저 암석 설치 선박인 '아카디아(ACADIA)'호가 잔잔한 강물을 미끄러지듯 조용히 떠나고 있었다. 이번 진수는 한화가 2024년 말 1억달러를 투자해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뒤 두 번째였지만 그 의미는 남달랐다. 한화는 인수 직후인 올해 초부터 이 선박의 블록 조립에 착수했고, 당초 12월로 예정됐던 진수를 5개월 앞당겨 7월에 완료했다.


조선소 내부는 이미 '한화의 색'으로 탈바꿈했다. 기존 파란색 골리앗 크레인은 한화 상징색인 주황색으로 재도색됐고, 'Hanwha' 로고도 선명히 새겨졌다. 길이 330m, 폭 45m의 도크에선 크레인이 옮긴 블록들이 조립되며 한화가 미국 해사청(MARAD)으로부터 수주한 국가안보다목적선(NSMV)이 건조 중이었다.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 조선소를 인수한 사례인 한화 필리조선소의 진수식과 우뚝 선 주황색 골리앗은 미국 조선업 부활에 기여할 K조선의 경쟁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 4도크에서 국가안보다목적선박(NSMV) 건조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그 뒤편에서는 아카디아호가 진수 중이다. 사진=한화오션 제공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 4도크에서 국가안보다목적선박(NSMV) 건조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그 뒤편에서는 아카디아호가 진수 중이다. 사진=한화오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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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2030년까지 연간 10척 건조 목표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 본관 앞에서 직원들이 분주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제공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 본관 앞에서 직원들이 분주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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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는 필리조선소를 북미 시장 진출의 전략 거점으로 삼고 함정·상선 수요가 증가하는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생산성 극대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재 연간 1~1.5척 수준인 선박 건조 능력을 중장기적으로 연간 10척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 목표다. 이종무 한화 필리조선소 소장은 "연간 40척 이상을 건조하는 한화오션 시스템을 도입해 필리조선소 설비를 고도화하고 일부 자동화 기술은 한국보다 먼저 도입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생산 속도와 공정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2030년까지 연간 10척 이상을 건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필리조선소는 두 개의 도크에서 연간 1만5000t 규모의 블록을 처리하고 있다. 이는 한국 조선소의 동일 면적 처리 능력인 2만5000t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이에 한화는 블록 탑재 속도 향상, 고속 용접기 도입, 자동화 설비 확대 등을 통해 생산 효율을 한국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선박 한 척당 수주 금액은 약 4억달러로, 생산 능력이 확대되면 향후 5년 내 연간 40억달러 규모의 매출이 기대된다.


이와 관련해 데이비드 김 한화 필리조선소 대표는 "올해 1분기 설비투자(CAPEX) 규모가 이미 지난해 전체 수준을 넘어섰고 올해 연간 투자액은 지난 10년간 총투자 규모를 초과할 전망"이라며 "설비와 인력에 대한 전방위적 투자로 조선 역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필리조선소의 수주 잔량은 NSMV와 컨테이너선을 포함해 총 7척이 전부다. 한화 관계자는 "지금은 상선만 건조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해군 함정 블록이나 모듈 공급, 함정 건조를 위한 준비도 진행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미 군함을 건조하려면 정부에서 면허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다.


생산 능력 향상을 위한 노동력 확보도 과제다. 한화오션 은 50여명의 기술자를 파견해 조립 및 품질 향상을 지원하고 있다. 동시에 필리조선소도 용접공을 직접 양성 중이다. 현재 170명이 넘는 견습생들이 조선소 자체 교육 센터에서 훈련받고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견습생이 용접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권해영 특파원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견습생이 용접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권해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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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현지시간) 데이비드 김 한화 필리조선소 대표가 한국 특파원단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제공

지난 16일(현지시간) 데이비드 김 한화 필리조선소 대표가 한국 특파원단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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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조선 협력 상징…美 조선업 재건 전초기지

한화 필리조선소는 단순한 미국 진출 교두보를 넘어 미국 조선업 재건과 한미 산업 협력을 상징적 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세계 최강 해군력과 조선 기술을 자랑했던 미국은 현재 조선 산업 전반이 장기 침체에 빠졌다. BRS 십브로커스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중국이 6765척, 일본이 3120척, 한국이 2405척의 상업용 선박을 건조한 반면 미국은 단 37척의 상선을 만드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조선업 경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에 조선 기술 협력을 요청했다. 생산 인프라가 부족한 미국에 한국은 믿을 만한 동맹이자, 검증된 기술과 대량 건조 경험을 갖춘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화는 미 조선업 부활 전략의 핵심축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다.


현재 미 의회는 '조선업 강화법'을 발의해 향후 10년간 전략상선 250척 확보, 2047년까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의 15%를 미국산 선박으로 운송한다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해군 함정 수요까지 더하면 200척 이상의 신규 수요가 예상된다. 또한 미 조선업 경쟁력 쇠퇴를 불러온 보호주의 법안인 '존스법' '번스·톨레프슨 수정법' 등이 군함과 각종 선박을 미국 내에서 건조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어 한화의 현지 생산 기반 구축은 전략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한화오션은 미국 시장 확대를 계기로 국내 중소 조선·기자재 업체들의 동반 진출을 유도함으로써 국내 조선 생태계 강화에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정인섭 한화오션 사장은 "한미 간 조선 협력을 통해 한국 조선업 생태계 전체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기술력과 생산력을 함께 이전해 미국 내 새로운 조선업 모델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필라델피아=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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